매일신문

클린턴 친북인사 왜 요직앉혔나 추궁

불발로 끝난 호소카와(세천호희)일본총리의 개각 노림수는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관방장관을 밀어내는데 있었다. 이는 다케무라장관과 갈등을 빚어온 연립정권 막후실력자 오자와(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의 강한 요구에따른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사실은 다케무라장관이 북한과 두터운 통로를 가지고 있는데 대한 미국측의 불신과 요청으로 그를 경질하려했다는 설이나돌아 관심을 끌고있다.3일 발간된 일본의 인기대중잡지 {주간포스트}(3월11일자)는 여야정계소식통을 인용, 호소카와총리의 내각개편 시도, 특히 다케무라장관을 경질대상에 올린 것은 대미약속 때문이었다는 설을 보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호소카와총리는 지난달 방미직후인 2월10일 개각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클린턴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핵문제와 일본의 제재동참을 협의하는 도중 {북한과 깊은 관계를 가진 인물을 어떻게 정권중추에 앉혀놓느냐}는 추궁을 받은데 기인했다는 것. 클린턴대통령이 지적한 인물은 다케무라장관으로, 이때 호소카와총리는 그의 경질을 약속한게 아닌가 보여진다는것이다.

호소카와총리는 방미전까지만 해도 북한제재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었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을 만난후 [제재시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동참할 것]이라고 분명한 태도를 밝혔고, 귀국후 국회답변에서는 현행법을 개정해서라도 대처하겠다고 적극화했다. 그 배경은 미국측의 심각한 정세설명이었고, 그때 관방장관의 대북유화자세도 지적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이 잡지는 다케무라장관이 지난85년 시가(자하)현지사 시절 개최한 국제마라톤대회에 북한선수를 초청한 것을 계기로 대북친교를 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그는 그후 북한연수생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직접 북한을 여러차례 방문해 김일성을 만난 적도 있다는 것. 다케무라장관은 당시의 대북교류{실적}을 평가받아 90년 북한을 방문해 공동성명을 발표했던 {가네마루(김환신)방조단}에 사무국장으로 수행, 성명의 기초작업도 해냈다는 것이다.이같은 북한과의 인연 때문인지 다케무라장관은 사회당 등과 함께 대북제재동참에 신중한 입장으로 알려져, 북한으로 흘러가는 조총련 자금줄을 정밀추적해온 미국이 그 점에 대한 우려를 호소카와총리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다케무라장관과 연립내 {정적}인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난달초한 TV에 나와 [북한은 이미 핵무장을 했다]는 견해를 밝힌 것과 관련, 정보원이 미국일 것이라는 풍문이 나돈 적이 있어 이번 개각파동과 연관짓는 시각도있다.

한편 호소카와총리는 미국측의 요구에 응하되 다케무라장관과의 오랜 우정을감안, 미국의 요구 혹은 북한과의 관계때문이라는 억측을 부르지않도록 {다른 주요 각료로의 이동}형식으로 그의 정치적 명예를 지켜주려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다케무라장관은 어디까지나 오자와-이치가와(시천웅일&공명당서기장)의 이른바 {이치이치 라인}과의 정치적 대립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며버텨 사회.민사당과의 연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소카와총리가 방미후 귀국기상에서 하타(우전자)외상과 개각협의도중 관방장관을 제의했고 {다케무라 외상}에 합의했었다는 후문을 고려하면 의문도 없지않다. 미국의 기피요구에 따른 것이라면 호소카와총리가 왜 하필 대미접촉이 많은 외상에 앉히려 했겠느냐는 것이다.

이 잡지는 요시하라(길원효사)관방장관비서관은 {미국측의 경질요구설}에 대해 [전혀 들은바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나 총리실 주변인사는 취재진에게 [그런 내용은 알수는 없지만 다케무라씨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총리가 충분히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케무라장관이 당수인 신당선구의 한 간부는 [왜 이 시점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북한문제가 앞으로 중대한 과제로 등장할 것인 만큼 더더욱 북한과 두터운 파이프를 가진 인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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