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이 테이프는 언젠가 같은 감독이 만든 {푸른 노트}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대여해둔 것이었는데 영화를 볼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 사흘간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이었다. 소피 마르소라는 예쁘장한 여배우가 나왔지만 자기 역할을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채 반도 되기 전에 비디오도 꺼버렸다. 그새 어머니는 내가 겨울동안 입을 두꺼운 모직 스커트를 완성해 놓으시곤 잠이드셨다.그러니까 채 열한시가 안된 시간부터 지금까지를 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있었던 게다. 잠시 그치는가 했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고 마음이 자꾸 스산해져 이어폰을 꽂은 채 쇼팽의 녹턴들을 들었다. 쇼팽의 곡들은{푸른 노트}라는 그 영화를 본 이후부터 간혹 듣기 시작한 것으로 웬지 음악을 듣는 사이사이 가슴이 꽉 막히는 통증을 느끼곤 하였다.

아무런 행위가 없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 때로 제멋대로 마음이 격렬한 슬픔속을 떠돌았고 그것은 언제나 신체적인 통증으로 나타났다. 희한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언제나 고요하기만 한 마음 상태에다 생활도 평화롭기만 한데 어째서 음악을 들으면 이런 상태에 빠져 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나는 소리 죽여 한참을 흐느꼈다. 그 누구에게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그저 추적이며 내리는 가을비 탓일 뿐이라고, 다만 내 귓가에서만흘러 넘치는 음악 탓일 뿐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나는 어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옷장속에 숨겨 두었던 양주를 유리컵에 가득 부었다.적갈색의 액체를 한모금 목으로 흘려 넣고 유리창에 가만히 이마를 기대었다.얇은 원피스 잠옷 차림으론 견디기 어려운 싸늘한 촉감이 온몸에 전해졌다.아니다. 견디기 힘든 것이 추위였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다. 내 몸과마음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득한 슬픔이었다. 다만 홀로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일까. 유행가 가사처럼 나는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삶 위에 더께더께 덧칠된 잿빛의 색채들이 순간,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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