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9)

나는 풀썩 주저 앉았다. 나를 덮쳐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거대한 슬픔에나는 대항할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 채 오래오래 주저 앉아만 있었다. 이미돌이켜 살아볼 수도 없을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나는. 또 더 이상 새로이 어떤것을 시작할 만큼 젊지도 않구나. 자신에게 수없이 되풀이해온 그런 말들을중얼거리면서.그리곤 겨우 자신을 추스려 이 책상 앞에 앉은 거다. 책상에 앉긴 했어도 뭘하겠다는 생각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나도 모르게 별 다를 것도 없는 하루를 돌이켜 보면서 연필을 한 다스나 정성들여 깎았다. 무엇인가를 끄적여 기록해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모를만큼 아득해서 다시 무엇인가를 쓸 수 있을것 같지 않았으나 나는 다짜고짜 {선인장에 관하여}라고 새 공책의 한 귀퉁이에 적어 넣었다.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는 어떤 느낌을 글로 적는다는 것이 꼭잘 정리된 생각으로만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자신도 알수 없는 열에 들떠 무엇인가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해 여름은 아주 특별하였다. 시간은 잠시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잘도 흘러가며 늘 우리를 충동질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그 시간의 부지런함과 격려에 답하는 일을 하며 살 운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해 여름의 일들을 제외하고는 하도 하찮은 일들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조차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나를 위한 인생의 다음 단계가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저 충실히 거기에 순응했다.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아버지는 두번의 위 수술로 이미 기진한 상태셨는데 그 다음해에 엉뚱하게도 췌장암으로 짧은 생을 마치셨다. 세무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이 도시의 중심가에 집 한채를 남겨 놓으셨을 뿐이라 어머니는 맏딸인 나를 부둥켜 안은 채 넋을 잃으셨다. 그럴 것이 내 밑으로 세 살씩의 터울로 남동생 준수와 이란성 쌍생아인 미수와 혜수, 이렇게 어린 사형제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전혀 준비가 없으신 것이었다. 나를 돌아보던 어머니의 유약한 눈빛을 지금도 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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