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액현금지불 상점들 환대

3년전만해도 러시아인들이 파리에 들르면 가장 저렴한 상점인 '따띠'로 몰려가곤했다. 이들은 프랑스인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싸구려상품들만 산더미처럼 구입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생필품이 귀한 러시아에서는 없어서 못팔뿐 아니라 첨단 패션을 상징하는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표시로 일반 상품보다 몇배의 가격을 더 받고 팔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파리를 방문하는 러시아인들의 소비성향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있어 프랑스인들의 관심을끌고있다.파리를 찾는 러시아판 신흥 백만장자들은 최고급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상으로 단장을 하고 '막심'등 최고급 식당에서 1인당 1천5백프랑(약22만원)짜리식사를 예사로 한다. 또 호텔도 최고급으로만 찾아가며 여정을 푼다. 이들은불어는 물론 영어도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무리 거액이라도 현금으로지불하고 있어 상점들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돈 많은 아랍 부호쯤으로 대하던 호텔 종업원들은 이들이 침체기에 빠져있는 러시아 사람들이라는 것에 아연실색한다. 왜냐하면 러시아인의 평균 월수입이 3백프랑(약4만5천원)에 불과하고 인플레이션율은 연 8백%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시베리아 출신의 불라디미르 이바노비치(34)는 1년에 두번정도 파리를 찾는데 서구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렸다. 그는 전자 제품수입, 석유수출을 하는사업가로 파리에 오면 늘 호화로운 곳만 찾아다니는 전형적인 신흥 러시아판백만장자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을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변화에 경멸을표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프랑스인들이 이제는 완전히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같은 신흥 러시아판 백만장자들의 특징은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는 수출입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무정부상태를 십분 이용하여 재산을 긁어모은 이재에 밝은 젊은층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가들 말고도 최고급 상점들만 드나드는 또다른 부류의 러시아인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구소련 고위 공직자들로 기득권을 이용하여 치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서구를 TV로만 알고 있어 프랑스인 모두가 최고가의류인 '크리스티앙 디오르'만을 입고 있는줄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파리에 오면 가진것을 몽땅 털어 부의 상징으로여겨지는 것들을 사들이곤 한다.

어쨌든 러시아의 신흥 백만장자들은 경제가 혼미에 빠져 있는것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억눌려져 있던 자신들의 사업가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를 살펴볼때 이젠 과거처럼 러시아의 거대 국영기업 공장 대표가 협상을 위해 파리의 구석진 싸구려 카페(다방)에서 얼굴을 붉히는 광경은 찾아보기 힘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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