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고백체에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둔 말들을 기록하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를 되찾고 싶어 미련없이 적은 내용을 찢어 버렸다.첫머리에 적었던 그해 여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면서 처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글쓰기를 진행시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누구나 시인의 기질을 얼마간 가진다는 소녀기에도 난 뭘 써본 적이 없는 부류였다. 심야 방송을 들으며엽서를 보내는 친구들의 다정다감함을 난 잘 이해할 수 없어 했었고 남학생에게 편지를 띄우는 일도 없었다.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한심하게도 나는 내 생각을 적어 나갈양식을 찾지 못한 채 노트를 접었다. 한동안 나는 오늘 하루종일 내 머리를떠나지 않고 있었던 선인장에 대해 생각했다. 선인장에 관한 이야기부터 적어야겠다,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으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담, 하고 얼른고쳐서 다시 중얼거렸다.
이런 글쓰기에 갑자기 매달려 있는 게 웬 탓인가? 무엇에 소용될지 알지 못한 채 이렇게 충동적으로 어떤 글을 쓰겠다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글쓰기를시도하지 못하고 이 글쓰기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흔히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하였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묶으면여러 수십권을 묶을 수 있을 게다. 사실 어머니는 전쟁과 지독한 가난의 시대를 거쳐 오셨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일찍 남편을 잃어 평탄치 못한 삶을 경험하셨으니 그런 말씀을 하실만도 하였다. 요즈음 쏟아져 나온 책들 속에는 어머니보다 더 특별할 것도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절절히 풀어 놓고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게 적지 않으니 어머니의 이야기도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할 지도 모르는데...
나는 살아온 특별한 삶을 자서전이나 회고록으로 기록하는 많은 위인들은 물론이고 내 어머니만큼의 경험도, 할 이야기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무엇인가를쓰려고 하다니. 뭘?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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