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저 애가 정말 혜수가 분명하단 말이지,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몇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고 있었다. 긴 새틴 드레스를 입고 금발의 고수머리 가발을 덮어 쓴 혜수는 영락없는 서양여자의 모습이었다.허리를 꼭 조여맨 차림이라 젖가슴의 양감이 한껏 도드라져 보이는데다 가슴부분을 여미는 끈마저 느슨히 풀어 헤친 채 새된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있는혜수는 무엇보다 집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관능적이고 생명력이넘치는 극 속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화사하게 분장한 혜수의 얼굴은 아주화려하고 분방한 모습이라 내가 알고 있던 한 내성적인 아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렇게 더운 날 이런 장소에서 {느릅나무 밑의 욕망}을 공연하다니. 혜수의모습이 생소하게 보이는 것이 공연 장소 탓만은 아닐텐데도 나는 그렇게 속말을 해 보았다. 엷은 드레스에 땀이 배어 나와 몸에 착 달라붙은 모습이 내가 앉은 자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였고 조명을 받는 위치에 따라서 그애의 옆얼굴과 손매의 부분부분이 아주 세세하게 드러났다. 난 혜수의 몸이 움직이는걸 지켜 보느라고 대사는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무대와 객석이 그리 멀지 않은 소극장에서 공연하기에는 스케일이 좀 큰 작품이 아닐까 싶었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아주 시시콜콜히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볼 수 있는 점이 이 연극에선 장점이 되고 있었다. 다른 연극에서 좀처럼찾아보기 힘든 맛이 있다고 느껴진 것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혜수는 이 연극의 중심 인물로 아주 가까이 실제하는 여인처럼 보였다. 애욕에 사로 잡힌 여주인공 {애비}역을 맡은 혜수가 이 연극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해 가고 있어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도 나와 다름없이 아주긴장되고 진지한 자세로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한 지방 극단에서 기획한연극으로는 무대의 세트나 조명, 음향등도 무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배우들끼리의 호흡이 아주 잘 맞아서 더 이상 이 연극을 잘 만들 수도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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