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내가 연극을 해. 언니도 알지?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그거 공연해]언제나처럼 어깨를 한껏 공그린 자세로 내 눈조차 똑바로 쳐다 보지 않고서그애는 웅얼거렸다. 나는 그런 소극적인 말투를 가진 아이가 연극을 한다는사실에 화들짝 놀라 팸플릿을 다시 찬찬히 살펴 보았다.
팸플릿 속에는 한쪽으로 가리마를 탄 단발머리에 실핀을 꽂아 윗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시킨 여고생같은 혜수의 사진이 흑백으로 찍혀져 있었다.그냥 소일거리로 해보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기가 막혔다. 혜수가 얼마나 내성적인 아이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혜수가 연극을 한다는 걸믿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는 나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었다. 혜수는 통 말이 없는 아이라 사춘기이후 그애가 한 말은 모두기억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애는 대학생이 되었던 스무살부터 육년간이나 집을 떠나 혼자 줄곧지내 왔었다. 물론 미수를 제외하곤 다른 가족들 역시 말수가 크게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다를 건 없었지만 혜수는 그 정도가 확실히 좀 지나쳤다. 하도말이 없어 우리 가족은 혜수가 일종의 자폐상태에 있는 게 아닐까고 의심스러워도 했다.
미수의 쾌활하고 다혈질인 성격에 비교해 보면 혜수의 성격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면에선 나와 혜수가 오히려 쌍생아처럼 닮아 있었다. 우선 혜수나 나나 말수가 적었다. 그건 상대에겐 무척 답답한 일일 것이다.[아무리 이란성이라고는 하지만 쌍생아인데 둘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내 딸이긴 해도 혜수는 정말 버거워]
어머니는 혜수를 두고 버릇처럼 한숨을 쉬시곤 하셨다. 그애에 관한 문제를두고서는 아예 혜수와 직접 얘기하실 생각을 않고 언제나 나를 통해 해결하시려고도 했다. 아무래도 언니를 더 마음 편하게 여길게 아니겠느냐는 핑계셨지만 나도 혜수에 관해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는것도, 알아낼 방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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