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23)

혜수는 익숙하게 술을 주문하였다. 내 몫으론 레몬 스카치 한 잔을, 그리고자신의 몫으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양주를 얼음과 함께 가져다 내미는 걸로 봐서 혜수는 늘 그렇게 마셔온 모양이었다. 혜수는 익숙하게 술잔에 얼음을 집어 넣곤 놀라는 내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걱정 마. 많이는 안 마셔. 그리고 나, 담배 피워도 되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혜수는 손에 들고 있던 손지갑을 열어 담배를 꺼내었다. 솔직히 쓰러질만큼나는 당황하였다. 첫째로 내 주위의 어떤 젊은 여성이 담배 피우는 걸 난본 적이 없어서였고 둘째로 내 여동생이 익숙하게 담배를 피워온 모양인데도 내가 전혀 몰랐기 때문이고, 셋째로 혜수의 그 작은 지갑에 담배가 들어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손안에 쏙 들어차는 그 작은 손지갑에서 담배가 나오는 걸 보고서는 그 지갑이 거의 담배 케이스로 쓰이고 있다는 게 기가 막혔다. 나는 혜수가 후 연기를 내뿜는 모습에 참견을 하였다.

[언제부터니? 그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는 알지? 게다가 넌 연극을 하면서]어쩔 수 없이 선생님 같은 말투로 언니 행세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한마디 했을 때에 혜수는 별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곤 별로 털 것도 없는재를 톡톡 두어번 털고는 술을 한모금 들이켰다. 나는 레몬 스카치를 마시고싶은 생각이 없어져서 따로 물 한잔을 부탁해서 얼음덩이를 두어개 띄우곤단숨에 마셨다.

[너도 벌써 나이가 스물 일곱이나 되니까 알아서 하겠지만, 이제 남 생각도좀 해.나이가 드는 게 더 무서워. 남의 평판 같은 것에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하구,경제적인 자립도 해야 하구, 또 웬만하면 나처럼 혼자 이렇게 늙지도 말아야지. 늦었는데 그만 가자]

나는 나름대로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면서 말했지만 자꾸 설교조가 되고 있어짜증이 났다. 이 나이가 되도록 다 큰 동생이랑 꼭 이런 식으로밖에는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일까. 혜수랑 마주앉아 모처럼 속 얘기를 좀 나눌 수도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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