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악성-{대통령 귀는 당나귀 귀}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1세는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그래서 가끔 연극 공연이 있으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잠깐씩 대리 연기를 하곤했는데 {프린}이란 작가가 연극배우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귀가 잘리고3천만원의 벌금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지엄하신 여왕 폐하의 심기를건드린 죄였다.임금의 비위를 거스를 말이나 권위를 훼손시킬 이야기를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목숨을 부지 못하는건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서태후가 소일 상대로 데리고 놀던 4살짜리 장기신동이 어느날 친근해진 태후를 믿고 무심결에 [장받아!]라는 반말을 했다가 재깍 목이 잘렸다는 얘기도통치자의 권위는 아랫것들의 입실수에는 절대 관대하지 않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우리네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감히 발설할수 없어서 혼자만몰래 대나무밭에 들어가 구덩이속에 대고 실컷 외치고 나온다는 우화에서 왕권시대의 권위주의와 아랫사람의 입조심을 배운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인들중에도 아무리 옳고 바른 말이라도 어전에서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입바르게 말하는 소신있는 큰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딱한 것은 차라리 말할 용기가 없어서 침묵하고나 있으면 그럴수도 있으려니 절반쯤은 좋게 봐줄수도 있겠는데 참새 죽을때 짹! 소리 낸다는 식으로공연한 허세는 꼭꼭 부리고 밀려난다. {내가 입만 뻥긋하면 여러사람 다친다}는 얘기나 {내말 한마디면 YS의 정치생명은 끝난다}는 이야기들이 그런류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구체성이 없다.

그저 {임금님 귀에 대해 이야기해버릴거야!}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아직 누구귀가 어떻다는 비밀은 어느누구도 털어놓은 사람이 없다.

지난주에는 전직 국회의장이 또 그런류의 {참새소리}를 했다.[YS가 대통령 그만둔 다음에 얘기할 사안인데... YS 그만둔 다음에 더 이야기 하기로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두가지가 아니예요...]듣는 분위기로 짐작하면 YS의 권위에 침튀길 이야기가 있긴 있는데 {지금}은 이야기 할수 없고 당나귀 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YS가 힘빠진다음에 말 하겠다는 식이다.

안듣기보다 못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우리는 혼자만 아는 거창한 비밀인양뜸들이고 포장한뒤에 속으로는 은근한 보신용 협박으로 이용한듯한 당나귀 얘기뺀 임금님 귀이야기 류의 허세발언에 식상해왔다.

지금은 누가 나서서 [내가 뻥긋하면 지구가 깨진다]고 해도 눈도 깜짝안할정도로 밝힐용기도 없이 변죽만 울리는 비밀 이야기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굳이 말안해도 너나할것없이 구리고 캥기는 비밀들을 한짐씩 깔고앉아 있을거라는 불신밖에 없다.

적어도 구체성없는 암시적 발언들은 국민들에게 불신만 덧씌울뿐 득될게 없는 것이다. 그런 칙칙하고 느끼한 불신의 구덩이 속에서 며칠전 냉장고에서갓꺼낸 오이소박이 마냥 상큼한 별미를 맛보여준 사건이 터졌다.이회창 국무총리의 {자진사퇴}가 그것이다. 대쪽총리 이미지로보건대 아마대통령 앞에서도 {당신귀는 당나귀귀요}라는 투로 말했을거 아니냐는 추측을하게 만든다.

모처럼 대통령귀는 당나귀귀라고 말할수있는 총리를 만났다가 반년도 안돼인물하나를 잃게 된건 아까운 일이다.

총리가 이건 이게 옳다고 주장하면 툭 털어놓고 [그래 원래 내 귀는 크다.UR, 북핵, 중대하고 골치아픈 국정이 산더미 같은데 내귀 못난 이야기는 덮어주시고 나라일에 더 힘쓰자]며 끌어안았더라면 어느누가 당나귀귀 못생긴걸웃을 것인가.

누구든지 대통령귀는 당나귀귀라고 소신있게 말할수 있는 풍토가 생겨날수록통치자의 권위와 도덕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허물은 줄어든다는걸 흥분한 바람에 잠깐 잊은 것 같다.

거슬리는자마다 무조건 자르고 치기만 하다보면 언젠가 주위에는 {대통령 귀는 소귀}라는 얘기만 남고 그런 귀에는 국민의 소리가 경읽는 소리처럼 돼버린다는걸 알아야 한다.

총리사퇴를 계기로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는 대통령이 좀더 관대할 수 있기를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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