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갇힌아들...'부정의 속죄' 5년

"봄비 소리가 창살을 넘어 음악소리 같이 들립니다. 가정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꼭 안겨 보는게 제 소원입니다"대구 H국교 최영길교사(53)는 김천교도소에 수감중인 외동아들(19)이 부쳐온편지를 뒤적이다 먼 산을 바라본다. 이제는 말라버렸겠지 싶던 눈물이 어느새 눈가에 번졌다.

1일 '법의 날'을 맞는 그는 영원히 지우지 못할 가슴속의 깊은 생채기를 추스르기 위해 긴 호흡을 한다.

지난 89년1월의 악몽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친구의 전화를받고 집을 나간뒤 소식이 끊겼다. 그는 아들의 국민학교때 친구집까지 일일이확인했지만 행방을 찾을 길 없었다. 부산에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산으로 가 며칠간 수소문했지만 허탕이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한 그는 집에 전화를걸어 헛걸음한 사실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부인의 이야기에 땅이 무너지는듯 했다.서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는것. 급히 달려간 그는 한번더 절망했다. 살인공범. 귀엽기만 했던 그의 외아들 죄명이었다.

C나이트클럽 종업원이던 친구 민모군(당시 15세)이 손님 서모씨(당시 23세)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것. 이들 2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고뇌 속에 헤매던 그는 91년 보호관찰소를 찾았다.

"자식의 죄를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어린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는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보호관찰위원이돼 '죄수 부모'의 아픈 가슴을 소년범들에게 진솔하게보여주며 참된 삶을 살아줄 것을 당부했다. 그가 맡아 선도한 소년범은 9명.지금도 강간미수등의 낙인이 찍힌 3명을 수시로 만나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한달에 2번씩 아들 면회를 가고 틈이나는 대로 편지를 쓴다. 여기서도못다한 말은 일요일 마다 산에 올라 소년원이 있는 김천쪽으로 자리를 잡고앉아 몇시간이고 감옥의 아들이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출소를 10년 앞둔 아들 최군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며 사흘이 멀다하고답장을 보내온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돌을 던져도 자식이 다시 태어나도록 최선을 다해보아야지요"

'살인자의 아버지'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30년 외길 교사 아버지의 손에쥐어진 손수건은 물기로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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