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고산지대에 대한 보라콩대량도입이라는 주관적 욕망과 지시가 지배인의 정직한 설명 때문에 무슨 이유든 기분을 거슬리게 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한 것이다. 사실 지배인은 수령의 기분변화에 맞추어 "예,무조건 그리 하겠습니다"라고 다시 대답할 여유도 없었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인지 모른다. 아랫사람들의 소중한 운명이 수령의 기분에 따라예측할 수 없이 순간순간 좌우되는 판이었다.이때 나는 분명 수령과 인민사이에 그 어떤 민주적 논리란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교시전달}이 없었다면 우리도지배인을 그대로 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알고나서 지배인의 소행이결코 수령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수령이 주는 지시를 틀림없이 수행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인정 아니 할 수 없었다. 도대체 김일성이 {최고사령관명령}으로 군대와 같이 농사문제를 강요한다는 것은 무엇이며,그로부터 초래될 결과는 뻔한 일이니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나는 혼나간 사람처럼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전례없이 밖에까지 마중나온 아내와 부딪쳤다. 초저녁부터 곱게 화장한 얼굴에는 활짝 웃음을 띠며첫마디가 "어버이수령님 만나 뵈었어요"하고 묻는다. 나는 신음소리 비슷하게 대답하며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 심중을 전혀 알수 없는 아내는내가 어버이 수령님을 만났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감격에 겨워 있는줄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니 하모니카채속의 단칸방인 집은 그나마 빛이 부엌쪽에 달려있어 막혀있고 만성적인 전력부족에 의해 전등마저 수수떡같이 벌게 방안은초저녁 바깥보다 더 어두컴컴하였다. 아내는 이밥에 계란까지 차려있는 {진수성찬}을 쪽상채로 들여오며 수다떨기를 "아이가 계란을 보고 먹겠다고 성화하는 걸 다음에 준다하고 겨우 달래 밥만 먹여 먼저 재웠다"는 것이다. 그소리에 새삼스레 영양부족으로 식은땀 흘리며 맥없이 자고 있는 아이모습을 보며그 측은함에 오히려 계란을 주지않은 아내가 괘씸하고 야속하게 생각돼 밥숟가락을 놓아버렸다. 아내는 아마도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러갔던 사람이니식사도 잘 대접받고 왔으리라 짐작했는지 아무말없이 밥상을 쑥 내간다. 사실 아침부터 밥을 설치며 피곤한 접견을 마친후라 허기진 상태였는데 오늘따라 밥을 먹으라는 인사치레 말조차 없다.
이어 아내는 남편이 피곤해 하는 눈치만은 채고 이부자리를 펴며 부산을 떤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오늘 낮에 있은 수령님의 호통소리가 꿈과같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망연한 심정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그동안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님이라고 영원히 믿고있던 우상이 그렇게 쉽게 깨져버리고 나니 어딘가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직접 현실로 겪은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부인해 버릴수 있으랴.
한참을 누워 생각에 잠겨있는데 아내가 오늘따라 몇달 출장갔다온 남편을 기다렸다는 듯이 겨드랑이 밑으로 기어들어온다. 이날따라 향수내는 어떻게나역겨웠는지,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쌍놈의 여편네! 초저녁부터 왜 바람을 피우며 야단이야. 이거"이에 깜짝 놀란 아내는 벌벌 떨며 아이가 자는 구석으로 가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더니 흐느낌소리가 난다. 지금껏 남편과 싸워서 한번도 지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숭악스럽고 오돌찬 여편네가 이렇게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보니나자신 놀랄정도로 내 신경질은 돌발적이고 서슬퍼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잠시후 내 행동을 되새겨보니 황당한 내 신경질이 마치 낮에 있은 김일성의 호통소리와 그 이유가 마찬가지인것 같아 수령신봉자였으니 그 품격을 그대로따라나온 행동이 아닌가 해서 쓴웃음까지 나왔다.
더구나 아무 내용도 모르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려 고통을 주었으니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아내가 애처롭게 여겨져 곁에가서 어루만지려고 하니 이번에는 아내가 내 손을 탁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말좀 해봐요. 여편네가 자기 남편 좋아하는 것도 바람피우는 건가요" "그리고, 초저녁이라는데. 지금 밤11시야요. 겨울같으면 야밤중이나 같아요" "그리고, 쌍놈의 여편네라는데. 그 여편네의 남편은 쌍놈이겠구만요"이어 아내는 한수 더 떠서 "어버이 수령님을 만나 뵈었다고 이제는 값이 높아져서 나같은 여편네는 차 버리고 다른 여자 얻어보자는 궁리를 하는 거지요.아이만 놓아두고 어서 갈테면 가라우요. ...당신같이 고지식한 남자는 여자들이 살다가 머저리라고 너도나도 달아나고 말거야요. 꼭 두고 보라요. ...나같은 여자니까 이때껏 살아주지, 원 참"
아내는 턱에 닿은 숨을 잠시 몰아쉬더니 다시 기관총 쏘듯 연발 말을 잇는다."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보고 지금 뭐라고 평하는 줄 알아요? 고지식이라는소리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요. 이제는 고급 인테리 거지, 똑똑 머저리라고흉봐요"
"...그저 밤낮 충직성, 기술탐구 지금 이 사회에서는 그런데서 밥이 나오지않는다는 것만 똑똑히 명심해 두세요. ...옷도 변변한 것 없어 남의 것을 빌려입는 주제에, 어이구 참 답답도 하지"
아내의 야무진 욕사발중에서 내가 다른 여자를 보련다는 소리를 하나 빼놓고는 모두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먼저 이혼소리까지 탕탕하는 여편네소리에 사나이로서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땔 걱정, 먹을 걱정을 비롯한 가정일을 도맡아 풀어나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내였으므로 자존심보다도이 아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랴하는 아득한 생각이 들어 더 꼼짝못하게되는 것이다. 북한 선전그대로 수령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충직하게 일해나가면 사회가 더 좋아지고 잘 살아져야 하는데 어떻게 된 판인지 점점 거꾸로 돼 가정에서 아내에게까지 잡혀 살아야 하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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