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상하지? 그동안 억지로 내가 피하려고 해 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내 발목을 잡아 채고 있는 것 같아. 이젠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어졌어. 난 무력해. 생활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어. 며칠만내게 시간을 줘.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난 아주 복잡한 기분이었다. 나라면 생각 같은 것은 다른 일을 하면서 하는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무슨 생각인가를 하기 위해 따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이없는 말로 들렸지만 혜수의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어떤말이든 해야할 것 같았으나 혜수와 마주 앉고 보니 마치 우주인과 얘기하려고 드는 것 같았던 것이다. 혜수에게 연극에 관한 것이냐고 겨우 물어보니간단히 아니라고만 했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간혹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나는 혜수를 그런 아이중 하나로 보려고 마음 먹었다. 대개 그런 아이들에겐 진부한 설교나 훈화가 전혀 소용에닿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혜수의 말대로 잠시 여유를 갖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머니에게도 모른 척 하라고 미리 얘기해 두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혜수를 빌미로 사실 우리 형제들 모두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싶어하시는 것 같았다. 내 나이가 서른 셋, 준수는 서른, 미수와 혜수가 스물일곱이었다. 결혼 적령기를 넘은 나이의 장성한 자식들을 집안에 넷씩이나두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은 알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준수는 처음 입학했던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과에서 철학과로 편입을 하더니 학교를 두번 옮겨다시 다닌 걸로도 모자라서 또 새로 시험을 치러 신학대학교에 다니는 중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혜수는 집 식구들과 의논 한마디 없이 대학을 한 학기남겨 놓고 자퇴를 하는가 했더니 이년간을 아르바이트해선 유럽과 인도로배낭여행을 떠났었다. 돌아와선 마치 겨울잠을 자듯 집안에서 웅크려 있기를몇개월, 그러더니 이제는 연극을 하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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