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혜수가 그와 호텔로, 그것도 아직 밝은 시간에 들어선 일은 적어도 두 가지점에서 내게 묘한 배반감 같은 걸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혜수가 우선은나의 혈육이라는 점, 그리고 방금 내가 읽었던 노트에 온갖 관념을 현란한어휘로 나열해 놓은 바로 그 장본인이라는 점이었다. 가족이라면 누구든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서먹해지고 달라 보이며 약간불쾌한 기분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으로내가 태어났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예민하게도 한 사흘을 말을 잊었던기억이 있었다.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올케,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누이와 그 남편,그 많은 결합들이 아니라면 나와 조카와 손자가 없는 것인데도 자신이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 결합하기 전까지는 결코 그런 복잡한 기분을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닐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간에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타락의 냄새를풍기고 있다는 점도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아직껏 성적 체험을 가져보지못한 나로서는 대낮의 정사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미혼의 남녀가자연스레 어울려 호텔을 드나들 수 있는 분방함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혜수 말처럼 비록 그들의 관계가 어떤 절실한 느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하더라도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서두를 것도 없지않는가 싶었다. 나는 마치 바람난 배우자를 뒤쫓는 듯이 구석진 자리에서냉커피를 주문해 홀짝거리는 나에게 화가 났다.

헌데 나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호텔의 프론트에는 두 쌍의 남녀가 더 방을빌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자신들의 관계를 치장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런 양을 노려 보았다. 현대의 성도덕이 이런 것이라면 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구나,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들을 굴리며 혜수가 나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들이 사라져간 그어둑신한 통로쪽에서 눈을 한시도 떼지 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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