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일본에서 한 공동묘지에 들른 일이 있다. 우리나라 매장제도가 문제를 안고 있어 세계의 묘지등에 관심을 가진 나에게 일본만해도 묘지제도가 상당히 {서양화} 된듯 좁은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태아도 한 생명**그런데 서양에서도 한국에서도 보지못한 올망졸망한 소묘들이 있는데, 이것은낙태 또는 유산으로 세상빛을 못본 이른바 수자(미즈코)들의 무덤이라 한다.도쿄에 71년에 낙태아 전용 공동묘지를 만들어 현재 1만 3천여개의 낙태아묘가 섰다고 한다. 비록 낙태는 시켰지만 태아의 명복을 빌면서 {속죄}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꽃, 장난감, 크레파스, 바람개비,어린이옷등으로 장식을 해놓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한국에도 이런 풍습이 있느냐는 물음에 매우 당황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유교윤리가 강하고 어린이가 죽으면 묘를 쓰지 않는 것이 관습인 줄 안다.그렇지만 자기의 형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새 생명을 죽이고도 아무런죄의식 없이 적당히 처치해 버리는 것은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식의마비 아니면 왜곡 아닐까. 유교윤리가 그렇다면 불교, 그리스도교에선 뭐라고할 것인가.
여기서 낙태아묘지 문제를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생명의 존엄을 부지불식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가 한번 반성해 보자는 얘기이다. 우리는가난, 전쟁, 도시화와 교통사고, 폭력과 인신매매등 온갖 이유와 장애로 인간성의 존엄과 가치가 파괴되어 왔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자유와 인권을 위해저항하는 대학생들조차 분신, 투신, 할복으로 목숨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다. 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줄을 잇자 여론은 죽음의 찬양에서 급선회하여 생명부정을 비난하는 방향에로 기울어졌다. 최근 학생들이 다시 지난날의 열사들을 추모하고 항쟁의거를 기념하는 집회를 개최하니 이런 기억이착잡하게 떠 오른다. 한국사회에서 진정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시키는 방법과 지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법치에 눈 돌려야**
나는 법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권리와 가치를 보장해주는 규범과 기준이 법이기 때문에 우선 그것부터 중요시 하지 않으면 다른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낙태, 간통을 포함하여 이미 수년간에걸친 토론과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한 형법안이 해를 넘겨 표류되고 있고, 최근에는 {농안법}안이 시행시기를 앞두고 갑작스런 사태로 다시 연기되고 있다.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이 일차적 의무인 국회가 여야의 정치싸움과 로비의혹으로 국민의 권익, 인간의 존엄을 입법을 통해 지키고 신장해나가는 데에서 멀어져 있으니 법치후진국의 모습이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행정부도 사정과 공직윤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인간존엄의 가치와 권익을 법규범을 통해 신장 시켜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텐데 구호만 반복하는 것 같다.마지막 보루인 사법과 검찰, 변호사들도 이러한 법철학에 입각한 소신있는 집행과 자기개혁을 해 나가야 할텐데 뭔가 복잡하게 꼬인 것 같은 인상을 지울수 없다.
한국의 법치주의는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 법률가 출신의 총리를 경질한후 다시 이런 의구심과 불안이 생기고, 다시 인치의 시대로 한 정권을 넘겨야하는 것인가 하는 체념들이 나오는 것 같다.
**모두가 책임감을**
요즈음 4, 5월은 한국현대사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새 역사는 수 많은 기념비로 장식한다. 대통령의 지시로 공원화 되는4.19묘역에 엄청나게 크고 비싼 기념비석들이 등장했다 한다. {회칠한 무덤}이 될까 두렵다. 숨가쁜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는 역사 속에서 조금씩 정의가실현되어가는 것을 느껴오다 최근들어 점점 그 위안과 희망이 철회되고 있다.특히 인간의 존엄이 법을 통해, 그리고 그 집행인 법치주의를 통해 실현되는가를 주시할 때 우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정부와 국회, 사법의 책임있는 직책에 있는 자들은 이 계절을 따갑게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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