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선인장 이야기(42)

여행하는 동안 지겨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미니 카셋트를 가지고 갔는데 여행하는 내내 음악을 듣게 되었다. 바깥 풍경이 그다지 내 마음을 끌지못했는데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던 것이다.파타야에서였다. 호텔의 창문을 열어두고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듣고 있었는데도 큰 강을 본 기억이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관현악의 울림이 내 귓속을 울리자 나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 아홉개의 나라를 거치는 도나우강이 어디서 비롯되어 어느 바다로 흘러 드는가 장난스레 찾아 보았다. 부다페스트에내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부다페스트, 하고 나는 소리내어 지명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뜻밖에 혜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혜수에게 어디에서어떻게 처음 그를 만났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혜수는 부다페스트!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는데 그때도 나는 부다페스트, 하고 속으로 따라 말해 보았던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곳을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란 거기가 어디든 천국이나 지옥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경주나 부산 정도를 가 보았을 뿐인 나는 그 이국의 한 장소가 너무나 아득히 멀게 느껴졌기에 할말을 잊었다.해서 거기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느냐고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아마 내가 동남아 여행을 떠난 것도 어쩌면 혜수의 일과 무관한 일이 아닐지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탓이었다. 내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것과는 달리 여고 때부터 낯선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곤 했던 혜수를 보며 나는 막연히 그 낯선 곳에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혜수가 낯선 땅에서 그를 만난 것과는 달리 나에게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동안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마음이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긴 해도 어쨌든날 홀가분하게 해 준 팔일간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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