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인장이야기(45)

과년한 세 여자와, 역시 결혼 적령기를 지나 보이는 젊은 사내와 나이든 여자의 행렬이라니. 사람들에겐 우리 가족의 나들이가 이상하게 보이고 궁금하게 여겨지기도 할 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소리내어 꾸밈없이 웃으며절을 찾았다.저녁 예불 시간이 가까워 오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범종 앞에 가 나란히자리를 잡았다. 멀리서 안개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어스름한 산사에서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맞다니. 나는 산 능선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가 주는 이 본능적인 친화와 남이 아닌 사람들끼리만의 결속감이 그렇게 든든한 느낌일 줄은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멀리, 아주 멀리까지 범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음 밑바닥에 고여 있던 온갖 감정들을 잠재워 주려는 듯 둔중한 종소리가 울릴 때 나는 미수의 손을 나도 모르게 꼭 부여 잡았다. 혜수가 슬며시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기대왔다. 혜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까. 우리는 그 한순간 태어나기 전, 피붙이로서의 일체감에 젖어 세상 고락을 잊었다. 긴 여름해가 그렇게 저물었다. 그리고 밤,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밤이 깊었다.

우리는 대학 신입생 때의 기분에 젖어 서로 다투어 저녁을 짓겠다고 우겼다.휴대용 버너에다 밥을 안친다는 둥 꽁치 통조림을 따 찌개를 끓인다는 둥수선을 피워 저녁상을 마련했을 땐 이미 아홉시가 넘어 있었다.설거지를 끝내고 모기향을 피워 놓고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작고 나즈막한 소리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머니는어느새 잠이 드시고 준수도 책이나 읽겠다고 따로 잡아둔 제 방으로 갔다.한시가 넘었을 때도 미수나 혜수는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며 민박집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수가 갑자기 세워둔차의 트렁크를 열고서 반상자쯤의 캔맥주를 꺼내왔다. 우리는 미수의 그 맹랑한 제안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주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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