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운명(운명) 열 하나나는 왜 그애랑 헤어지지 못하고 있느냐고, 그애와의 관계때문에 혹시 그가다른 할일을 놓치고 있거나 마음을 다치고 있지나 않느냐고 내친김에 덧붙였다.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혜수와의 일들을 아주 선명하게 하나하나 기억하고있습니다. 혜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의 삶이란 것도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을까요. 전 때로 시한부 삶을 사는 것처럼 조급해지기도 하고 한 순간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어서 안달하지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전 이후의 삶이 두렵기만 합니다]

내가 잘못 보았을까. 잘못 듣기라도 했을까.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언뜻눈물을 보았다.

나는 또 그의 목소리를 적시고 있는 습기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규정하려 들었던 어리석음을 그 순간 내버렸다. 그가 덧붙여 말한 것처럼 그의 사랑은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사냥꾼의 운명을 닮아 있는지도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와 무슨 이야기를 더 나누었는지, 그와 어떻게헤어졌는지를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동생 혜수의 삶이 아주 특별한 빛깔을 띠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가볍지 않은 혜수의태도가 어떤 삶으로 그애를 이끌어 갈는지 미리 예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그 삶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나는 바라보는 것 이상은 할 수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날밤 늦게서야 귀가한 혜수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로 쉽게 잠이 들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그애의 잠옷 자락을 슬쩍 들쳐 보았다. 허벅지에 수없이 긁어놓은 칼자국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혜수의 일로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서 소리 죽여 울었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에겐 아무리 강렬하고 진실한 사랑도 전혀 그 마음의 줄을 매어 놓을 수 없다는 걸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혜수의 마음이 헤매고 있는 그 낯선 곳이 어딘지 짐작할 수 조차 없다는 생각에 나는 소리쳤다. 아아,운명이여! 때때로 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없이 거친 상처를 갖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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