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혜수는 수술을 하며 울지 않았다. 그저 동공을 열어둔 채 멍하니 병원의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의 손을 꼭 잡고서 마취주사를 맞고 나서 혜수는 입술을 약간 비틀며 금속성이 반짝이는 수술 기구들을 오래 노려보더니 힘없이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더는 혜수를 지켜볼 수가 없어 나는 수술실을 나와 버렸다.단 몇분만에 수술은 쉽게 끝났고 혜수는 팔에 링겔 주사를 꽂은 채 아무렇지않게 회복실로 곧장 옮겨졌다. 혜수 외에도 소파 수술 환자는 넷이나 더 있었다. 흑흑 흐느껴 우는 여자, 껌을 씹으며 수술 준비를 하는 여자, 탈진한여자, 애인의 손을 부여잡고 파들거리며 떠는 여자, 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낙태아의 모습을 떠 올렸다.온몸을 잔뜩 웅크리며 도망을 치듯 수술기구를 피하던 그 조그만 생명체. 그작은 생명체의 본능적인 움츠림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본능적이라고 하기에는 의지가 있는 한 완벽한 존재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었다.이 세상의 빛도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사라져 갈 그 앙증맞은 생명체들이라니, 가슴이 아팠다.

나는 혜수가 수술을 받는 동안 또 '온갖 여성적인 것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파우스트의 외침도 생각했다. 그 온갖 여성적인 것이란 게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며 더 넓게 더 포근하게 이 세상을 감싸안는 것이라고 한다면우리는 지금 그 여성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온몸에 소슬한 추위가 느껴졌다. 나는 더 고집스럽게 혜수를 만류하지 못했던 걸 잠시 후회했다.

혜수는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 날, 몹시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살인행위를 하면서까지 뭘 원하고 있는 거냐고 도리어 나에게 다그치며 혜수는 실컷 울었다. 그런 혜수에게 아무런 말도 나는 해줄 수가 없었다.살인 행위라는 혜수의 표현이 무척 끔직하게 들려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없다고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혜수가 얼마나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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