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25 삼전 향토화가 최종모씨

"전상의 아픔을 한 평생 교육사업과 미술활동을 하며 달랬습니다. 의족을 끼운 왼쪽 허벅지부분이 아직까지 아프지만 살아온 인생이 불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향토의 한국화가 최종모씨(68)에게 6월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6.25때 당한 전상으로 몸이 불편해 취업이 어렵게 되자 직접 학교를 설립, 교육사업을한평생 일로 택했기 때문이다.

50년 포항동지상업학교교사였던 최화백은 전쟁이 터진 그해 9월 해군포항경비부 정훈실 정훈요원으로 참전했다.

불의의 전상을 입은 것은 입대한지 한달만인 10월. 국군이 북진하며 경비부가 원산항으로 옮기자 주민들의 정치교육자료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가다 경기도 탕감부근에서 인민군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대전차지뢰가 폭발하면서인민군의 총탄이 비오듯 쏟아졌고 다행히 운전병의 도움으로 탈출해 인근 신고산에서 민간인 의사로부터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왼쪽 다리는 이미 잃은 뒤였다.

불구의 몸이 된 최화백은 군에서 제대한 뒤 영일군 청하에서 부친의 도움으로 52년 중학교를 설립,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최화백은 이 때를 인생에서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최화백은 59년 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을 다시 한번 겪어야 했다.

자신의 모두를 바친 학교를 {집안경제 사정}으로 다른사람에게 넘겨야 했던것이다.

학교를 잃은 최화백은 대구로 와 10여년간 방랑생활을 하다 69년부터 미술교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화가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했다. 84년 제자들과 함께{대구한국화회}를 창립, 매년 작품전을 열어온 최화백은 85년부터 4년간 효성여대와 대구대에서 한국화강사로 출강하면서 후진양성에도 힘써왔다.현재 최화백은 개인전 20회, 83년 동경아세아미술대전 초대작가상, 90년 제10회 대구시 문화상수상등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활발한 활동으로 국내 미술계에 굵직한 업적을 쌓아오고 있다.

전상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미술활동에 매진했다는 최화백은"상이용사들은 지금도 전상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는 여유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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