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겨레여망 못살리고 명맥만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 4일로22주년을 맞는다.지금으로부터 22년전 남한의 이후낙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부수상이평양과 서울을 극비리에 교차방문, 막후협상을 거쳐 만들어 낸 것이 바로{7.4공동성명}으로 발표당시 우리 겨레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이 공동성명은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 *조국통일을 3원칙으로 하고 있다.지난 72년7월4일 오전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 성명이 발표되자 남북대결의 냉전분위기에 젖어있던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외신들은 {긴급뉴스}로 이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 따라 그해 10월12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1차회의에서 남북한은 조국통일 3원칙에 대한 서로간의 해석이 엄청나게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북측 위원장인 박성철부수상이 통일 3원칙에 따라*반공정책의 포기와 공산주의의 허용 *주한미군 철수 *국군의 전략증강및 군사훈련 중지등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이후 3차례의 본회의와 10차례의 부위원장접촉을 계속했지만 양측의 견해차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채 평행선을 그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남북조절위는 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김대중납치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해체되기에 이른다.

같은달 28일 북한이 김영주 노동당조직부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애국적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중앙정보부 깡패들과는 국가대사를 논의할 수 없다"며{대화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7.4 공동성명이 1년여만에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전락케 된 것이다.그 원인과 이유로 여러가지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주된 이유로는 공동성명채택 자체가 양측 모두 체제강화와 장기집권구축을 겨냥한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당시 민주세력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던 박대통령은 국면전환을 위해 7.4공동성명을 정치적으로 역이용, 이를 빌미로 결국 같은해 10월 17일 유신선포로1인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통일원칙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할 여유도 없이 중앙정보부가 독단적으로 밀실에서 성명채택을 추진한 과정 역시 비판을 면할 수 없었던 대목중하나.

또 북한도 합의사항 준수보다는 아예 합의사항 이용과 선전에 더 큰 목적을두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남북한양측이 모두 {염불 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따라서공동성명은 깨질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휴지조각으로 전락됐던 7.4 공동성명은 19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난92년2월18일 남북한이 고위급회담을 통해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역사속에다시금 의미를 되찾게 됐다.

기본합의서가 전문에서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뜻에 따라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비록 7.4공동성명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지만 그 내용을 해석하는 양측의시각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여전히 {선 정치.군사문제해결, 후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주장하고있으며 남한은 {선 경제.사회.문화 교류 후 정치.군사문제해결}이라는 접근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북한핵문제가 현안으로 남아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의 평양정상회담이 7.4공동성명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정리, 남북관계에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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