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선인장 이야기(84)

[언니, 오빠가 우울증이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오래 됐는데......]준수의 일을 겪고도 우리들 중 유일하게 평형을 유지하고 있던 혜수가 그렇게 말했을 때에도 나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준수의 짐을 서울까지 가서 찾아온 것도 혜수였는데 그 짐들 속에서 나는 한병의 알약과 일기장을 찾아냈다. 준수가 남긴 기록들을 보고서야 나는 그애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이상한 약들을 먹어 왔는지를 겨우 알게 되었다. 우리집 식구들 모두가 얼마간우울한 기질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병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곤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준수가 몇번씩이나 자살의 충동에 휩싸였던 것도, 그때마다 자신을 다스리기위해 일찍이 자살한 수많은 사람들을 경멸하는 글을 썼다는 것도, 그런 성향을 벗어 던지기 위해 연애를 시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것도, 최근에 만난 그 아가씨와의 관계가 마음과는 달리 늘 삐걱거리기만 했다는 것도 나는준수의 기록을 통해서야 모두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준수의 일을 어처구니없는 사고사로 꾸며서 말했다. 어머니는극도로 무기력해져 자리에서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시게 되었다. 자기가 낳은자식을 먼저 보내고 살아남은 부모의 마음을 다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난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보다 먼저 죽지는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적어도 자살 같은 걸 하는 멍청이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시간이 빨리 아주 많이 흐르기만을 바랐다.

몸과 마음을 좀 추스르고 내가 제일 먼저 한일은 준수가 남긴 기록을 없애는일이었다. 혜수가 짐더미에서 찾아낸 것이고 보니 혜수도 조금은 읽게 되었지만 아직 채 읽지 않은 부분을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적힌내용이 혜수까지 우리에게서 떠나도록 부추길까가 염려스러웠다. 나는 사실앞으로의 일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준수의 말처럼 준수와 가장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혜수였기 때문에 준수의 일로 혜수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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