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85)

혜수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겉보기엔 무척 차분하였다. 하지만 혜수는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가만히 들여다보며 넋을 잃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어느 한 곳에 오래 시선이 머물러 있을 땐 어떤 소리에도 꼼짝을 않았다. 마음 속의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게지, 하면서도그런상태가 잦아지자 나는 마음속으로 안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나로서도 혜수를 현실속으로 이끌어내어 올 수 없었다.게다가 내 마음 속에도 갖가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혜수의 일에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준수의 머리위에 덮히던 그 하얀 이불이 떠올랐고 준수의 방문 앞을 지날 때면 벌컥 밀치고 나오는 준수의 환영을보곤 했다. 신경증이었다. 의식적으론 무기력한 어머니도 돌보고 미수의 늦춰진 결혼날도 새로 잡고 혜수에게도 좀 다정다감하게 굴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나 자신을 추스리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나중에는 오래 생각에 잠겨 있곤 하던 혜수가 오히려 그런 나를 돌보아 주었다. 출근 시간도 지키지 못할만큼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하는 나를 추스려 준 것도 혜수였고 아무일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죄다 맡아 한 것도 혜수였다. 준수의 연인이었던 아가씨를 만나 준수와의 지난 관계를 잘 정리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도 혜수였다.여름의 그 긴 해가 차츰 짧아져 갔다. 그 사이 두 차례의 태풍이 지나갔다.태풍은 잔인하게 한 일가족을 흙더미 속에 파묻어 버리는 심술을 부리기도했고 여기저기 길을 끊어 버리기도 했고 선창에 매어둔 배들을 바닷속으로삼켜버리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태풍이 지나며 곳곳에 온통 상처를 남겼지만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도 곡식과 과일이 영글어가고 있었다. 계절은사람들의 일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사람들의 마음이 그 소란한 일들로 해서얼마나 크게 상처나는지 상관없이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력을 얼마간 되찾으시자 준수의 일로 해서인지 교회를 더욱 열심히 다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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