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는 아예 결혼날을 다음해 봄쯤으로 미뤄둔채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학교의 몇몇 선생들과 등산모임을 만들어 자주 가을산을 찾았다. 외면적으론 모두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도 보였다. 준수의 빈자리를 의식하여 우리는 자주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곤 했는데 세 자매가 전에 없이 똘똘 뭉쳐다니는 게 어머니로서도 싫지 않으신 모양이었다.한번은 미수의 약혼자인 신영우씨까지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혜수가 마음을 붙들어 매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었는지 짐작도 못하고 나는 그걸준수가 남겨 둔 유일한 긍정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혜수가 학교로 날 찾아 온 일이 있기전까지는 그런 착각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김선생, 웬 예쁜 아가씨가 한분 찾아와 수위실에서 기다리고 있던데]한 동료 교사가 전해준 말에 분필가루도 채 씻어내지 않고 나는 수위실로 향했다.하늘이 말할 수 없이 푸르고 맑게 개인 날이었다.교정에 심겨져 있는 벽오동 나무의 잎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 커다란 잎들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혜수가 나를 향해 마주 걸어 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아, 하고 가벼운 감탄을했다. 혜수는 잿빛 남방에 검은 진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웬지 그녀의 옷차림이 아주 겸허하고 탈속적으로 보인 탓이었다. 혜수의 발걸음이 하도 가벼워보여서 나는 뭐 좋은 일 있나 보지, 하며 말을 건넸다. 벽오동 큰 이파리 하나가 푸르륵 날아 오더니 혜수의 발치께에 떨어졌다.
혜수는 그걸 아주 공손한 자세로 주워 올려 꼭지를 잡고는 핑그르르 돌리며뭐, 언니가 어떤 곳에서 일하나 보려고, 하면서 딴 소리를 했다. 막 수업을끝낸 아이들이 떠들어대며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혜수는 그 아이들의 깨끗한 웃음소리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 앞 찻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혜수는 오랫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그이와 오늘 헤어졌어]
나는 얼른 혜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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