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선이 {김일성사후}에 쏠려 있고 핵문제가 소강국면에 빠진 가운데일본의 대북한정책이 눈에 띄게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신정권 출범이후 특히 가터방북을 전후해 표면화 된 일본의 대북접근 자세는 김일성사망후 더욱 노골화하는 감을 주고 있어 모종의 {교감}과 확신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일본여당인 자민-사회당과 신당선구등 집권3당은 13일 북한 김일성사망과 관련, 오는8월 사회당의 조문단이 평양을 다녀오면 분위기를 보아 3당합동 조문단을 파견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회의 참석자들은 일.북국교정상화 계기로삼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 외무성측도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이에앞서 사회당은 구보(구보긍)서기장을 단장으로 한총련본부의 빈소조문을마쳤으며 자민당도 오부치(소연혜삼) 부총재가 간부들을 끌고 조총련을 찾아깊은 조의를 표했다. 각료들은 표면적으로 {자숙}하고 있지만 무라야마(촌산부시)총리는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장인 나폴리에서 신속히 적의를 밝힌데이어 사회당위원장 자격으로 적전을 쳤고 고노(하야양평)부총리겸 외상도 조의표명후 자민당총재 이름으로 평양에 전보를 보냈다.
일본정부 수뇌들이 당을 앞세워 김일성사망을 기화로 전례없이 적극적 우호전달에 나선 것은 말할것도 없이 대북추파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대북 적극자세는 {지금이 바로 절호의 찬스}라는 판단이 배후에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친북사회당의 집권, 카터외교에 따른 핵문제 소강국면화, 미국의 유화책과 북한의 대화자세, 특히 카터가 전한 북한측의 {고급메시지}에 자신감이 생겨난 데 이은 {김정일체제 태동기활용}등 다각적 전략이 담긴 것으로 풀이되고있다. 이와함께 북한도 최근김용순노동당서기를 책임자로 하는 대일전담반, 즉 {아태평화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적극태세를 정비했다는 관측이어서, 양측이 상당수준의 교감을 갖지 않았나하는 심상치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잠재적 북한시장 진출과 함께, 한반도에의 영향력 참여를 노려 끊임없이 대북접근을 꾀해왔다. 그러나 국교정상화 교섭이 이은혜문제로 92년11월8차회담으로 중단된 이후, 북한에 철저히 외면당하는 바람에 속을 태워왔다.대북제재논의 와중에도 핵문제가 교섭재개 전제조건이 아니라고 일본이 누차 강조한 것은 그런 속사정에서 였다고 볼수있다.
일본의 상황변화 감지는 {핵고비}속의 친북사회당 연립정권출범을 신호로,카터방북을 전후한 북한의 초청외교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도 사회당과 자민당대표단, NHK등이 잇따라 평양에 초대됐고, 미키 다케오(삼목무부)전총리의부인 무쓰코(삼목목자)여사일행은 김일성을 만났다. 김주석은 미키전총리 부인과 카터를 통해 오랜만의 미소를 보냈다. 특히 카터를 통해 {핵이 전제조건이 될수없다}며 국교교섭을 재개하자고 권고한 김일성의 공개적 메시지 이면에는, 북한이 대일대화 해금을 포함한 모종의 은밀한 의향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사회당이 일찍이 8월 조문단파견을 결정하는등 자민-사회연립정권과 북한의 교감흔적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사망 소식에 일본정부가 크게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모처럼의 북한측태도가 돌변해 버릴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대화자세를 견지하는한 당장의 핵위기는 없다는 점, 북한의 연화가 돌연 경화하기는 힘들며김정일체제도 대화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등을 바탕으로,{적문}을 빙자한 대북접근공세 강화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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