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김정일 체제하의 남북관계

***양호민***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충격적 보도가 전해지면서부터 관심의 초점은 김일성의사인에서부터 김정일의 권력승계 가능성 여부, 노동당내의 동향여하등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으로 바뀌어갔다.

북한으로부터의 보도내용은 이미 김정일체제의 확립이 기정사실로 되어있고이것은 며칠뒤의 당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의 형식상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쏠리게 된 것이다.

**평화공존 정착이 우선**

점쟁이가 아닌 한 그것을 자신있게 예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우리도 모르고 김정일도, 그 측근도, 당간부도 알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몇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장차의 추이를 진단할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나 또는 정부의 견해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전쟁을 막아야 하고, 흡수통일은 원하지 않고, 경제협력을 비롯 각 분야에서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남북간에 우선 평화공존을 제도적으로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여론의 공통분모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에 있다. 6.25남침전쟁이후 40년동안 김일성이 밀고나온대남정책은 말로는 {조국의 평화통일}이지만 그 내용은 {남조선 혁명}에 의한 통일이었다. 즉 남한에서 혁명을 일으켜 친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그것과 북한의 사회주의 정권이 합쳐서 평화적으로 통일대업을 이룩한다는 환상적도식에 그는 죽을 때까지 매달려왔다.

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역대정부는 {미제의 괴뢰정부}요, 남한은 미국의{완전한 식민지}며, 주한미군은 {제국주의 침략 군대}다. 그렇다면 그런 남조선을 {해방}하여 전국에 걸쳐 민족적 자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아닐수 없다.이것이 그의 자주적 통일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김일성의 통일전략은 줄곧남북간의 냉전을 격화시켜 왔다. 대남 냉전정책에서 그가 내건 매혹적인 구호는 {평화통일}이었지만 그는 이 평화통일의 선전공세로 연막을 치면서 배후에서는 예의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앞으로 김정일체제는 김일성이 책정하고 감행해온 이러한 대남정책 노선으로부터 과연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일성을 무시하고 그의 대남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한다면 그것은 그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되며 결과적으로는 김일성의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백지화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실로 김정일체제의 사활과 연결되는 극히 중요한 문제다.**핵문제가 중대변삭**

당면한 현안으로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남북관계의 내일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다. 북한의 핵 의혹을 그대로 두고서는북.미회담도,남북간의 경제협력도, 평양정권의 국제적 고립의 타개도 결코기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점에 있어서 김정일체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된 것이다.곧 공표되겠지만 김일성의 절대권력과 세습제를 구축해온 당고위급 간부들은김정일체제의 골간을 형성하게 될 인물들과 거의 일치할 것이다. 이미 김일성의 교조주의에 중독되고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을 것이 거의 틀림없는 이들이 세계사의 방향과 한국의 국력에 조응하는 객관적 판단에서 대남정책에다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이 앞으로 김일성없는 김일성체제를 그의 장남의 이름에서 유지한다면 남북관계에는 획기적 변화란 결코 있을 수가 없다.한 시대가 막을 내렸으므로 북한도 개혁과 개방의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을수 없다고 예견하거나 또는 변화에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로는 한미.중.러 모두를 들수 있다. 그런데 김정일은 이미 자기의 일련의 논문들을통하여 소유형태의 다양화(국유화와 더불어 사기업)와 다당제를 부르조아의제도라고 하여 맹렬히 반대해 왔다.

또한 평양의 당이론가들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자기들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것은 {흡수통일을 하여 먹어치우자}는 것이라느니, 교류를 주장하는것은우리 내부에 {자유화바람}을 불어넣어 인민들의 사상.의식을 마비시킨 다음 남북총선거를 해서 저들의 제도를 공화국 북반부에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북한이 변화하고 섣불리 개혁, 개방했다가는 일당독재체제는 끝장나고 만다는 공포감이 숨어있으며, 따라서 철저한 폐쇄정책을 고수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볼때 김정일 체제하라고 해서 세계가 바라는 대로 북한이 자발적으로 변화하고,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가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개선될 전망이란 서지않는다.

그러나 한편 북한은 핵의혹이 불러들인 심각한 국제적 고립상태와 이미 한계상황을 넘고있는 경제적 곤궁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대내적으로 붕괴할수 밖에없는 막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이점에서 김정일체제는 주체사상의 이름에서사실은 이에 위배되는 정책의 궤도수정을 하여 대남관계를 바꿔나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멸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에잘못된 점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변화한다고 선언하면서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73년3월5일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주의를 비판할때까지는 3년이, 그것을 기본적으로 청산할때까지는 5년이 걸렸다. 76년9월9일 모택동사망후 등소평이 모택동을 격하하면서 대개혁의 시대를 열기까지에는 4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사이에 당내에서는 각각 후계자를 타도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투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때 북한에서도 김정일체제가 아마 몇차례의 권력투쟁을 통하여 다른 체제로 바뀔때 비로소 김일성주의의 우상은 무너지고 대남정책은 달라지게 될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망부를 {조선의 레닌}으로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 작업에 전력을기울일 것이다.

**전쟁위기는 격감**

장기적으로 볼때 북한에서도 개혁은 불가피하다. 지금은 비록 권력의 핵심밖에 있지만 세계정세의 변화와 북한내부의 모순에 눈을 뜬 당.군의 간부정보요원.지식인.외교관.기술관료등은 언젠가는 개혁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때이들 개혁파와 보수파사이에서는 생사를 건 공방의 권력투쟁을 벌이게 될것이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결국 탈김일성주의를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한반도의 정치적 조건이다.

다만 낙관할 것은 김정일시대에 들어서면서 남북에는 전쟁의 위기가 격감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북한에서는 전쟁을 치를만한 카리스마적 군사모험주의가 사라져버렸다. 여기서 남북은 대립과 논쟁과 조정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합의점을 찾게 될것이다. 이것이 현시점에서 가질수 있는 단기적추논이며, 이 이상을 미세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그것은 더욱 가상적인 공논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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