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혜수가 릴케의 이야기를 한 것인지 난 잘 알 수가 없었다. 나의궁금증을 씻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혜수는 언젠가 내가 훔쳐본 적이있었던 작은 상자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나는 익히 그 내용물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진의 인물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혜수가 무슨이야기를 더 늘어 놓을지 귀가 솔깃해졌다.[이 사진 좀 봐. 이건 아버지의 사진이야]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깜짝 놀라 그 사진을 아주 자세히 다시 들여다 보았다. 어떻게 전번에는 아버지의 얼굴도 못 알아 보았다는 걸까. 사진속의 얼굴은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눈이 좀 길씀한 데다 웃는듯 마는듯 미소 띤 얼굴,그건 젊은 시절의 아버지 사진이 틀림없었다.
하긴 아버지라고 젊은 시절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리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모습이라고는 해도 아버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내가바보같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왜 난 아버지의 사진 같은 것, 혹은 아버지의삶 같은 것에 그다지도 무심했을까 싶어졌다.
[언니, 자세히 들여다 봐. 아버지랑 그이가 무척 닮지 않았어? 난 아버지를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 아버지를 잊고 산 적이 없었어. 아버지가 남긴것이라곤 부재에 대한 기억 밖에 없는데도 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많이도갖고 있어. 난 아버지의 등에서 나던 냄새를 아직 잊지 못해. 그리고 때로정말 힘이 들 때는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날 호되게 꾸짖어 주었으면 하고바랐지. 뭐 그따위 허황된 생각을 하느냐? 뭐 그런 별 볼 일 없는 연애를 하느냐? 늦어도 아홉시까지는 집으로 들어 오도록 하거라. 선 봐서 이제는 그만시집을 가도록 하지. 난 몰래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였어......]
혜수는 아련한 일들을 추억하둣 그렇게 말을 하더니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이 사진들이 어디서 났니?]
나는 엉뚱하게 딴청을 부렸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던가. 나 역시 힘이 들때마다 아버지의 그 넓은 가슴에 기대고 싶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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