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비창 여덟나는 가까운 친구 하나가 아버지의 지나친 술로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그 기막힌 사연을 내게 늘어 놓았을 때, 나는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응, 큰집에서 아버지 사진을 찾아냈어. 아마 중학교 이학년 때였을 거야][그래서......넌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거니?]

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 뻔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눈가가 젖어 오는 걸숨기기 위해 사진 한장을 골라 들여다 보는 척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내가 여고 때 입었던 천으로 된 코트처럼 두텁고 단순한 디자인의 코트를 입고 바닷가의 바위 위에 우뚝 서 계셨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따라 아버지가 정말 그리워. 그리워서 그러는 거야.혈육이라는 것, 참 이상하지? 그 끈적끈적한 인력은 뭣 때문일까. 그와 헤어지는 건 차라리 쉬웠는데...... 그와는...... 난 그와 좋은 생각 한 귀퉁이쯤 부여 잡으면 다시 만나자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고 헤어지고 나서도차라리 잘 했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거든. 한데 누워 계신 어머니나 언니에겐 그럴 수가 없으니. 게다가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이렇게나집착하게 된다는 게 이상해]

나는 더 늦기 전에 혜수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고 있었는데도 결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혜수가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헤매는마음까지를 잡아 놓을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과 이곳에 남아서 하루 하루를견디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그애를 떠나 보내는 것만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혜수는 함 속에 들었던 청동거울과 함께 그 사진들을 나에게 맡겼다. 그 청동 거울은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샀다고 하며.

[언니. 난 이렇게 새파란 녹이 슬어 있는 거울에 옛 사람들이 어떻게 얼굴을비춰 보려고 했나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었어]

혜수는 내가 그 청동거울을 아주 소중하게 만지작거리는 양을 지켜보면서담배를 하나 피워 물더니 조용히 눈물을 닦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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