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소설이야기95

사진첩을 보고 나서 내가 꾸러미 하나를 내밀자 그들은 똑같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혜수가 미수와 그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두었다가 나에게 맡긴 물건이었다. 그걸 전해주며 늘 아웅다웅, 의견이 부딪히기는 했지만 한날 한시에태어난 것만으로도 혜수는 미수를 제 몸과 다름없이 여겼으리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는 그걸 전해주며 혜수의 일을 미수에게 알려 줄 참이었다.[웬 거야? 혜수가 마련한 거지? 그렇지?]미수도 알만 하다는 투였다. 빠르게 꾸러미를 풀어 헤치며 미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비틀어 깨물었다. 꾸러미중 하나는 내 생애에 그처럼 아름다운건 처음 본다 싶게 잘 다듬어 깎여진 에메랄드로 목걸이, 반지, 귀걸이 세트와 카우스버턴, 넥타이 핀이 들어 있었다. 극도로 장식이 절제되어 호숫빛나는 에메랄드의 색채가 두드러져 보였다. 물건따위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보인것 역시 내 감정이 과장되어 있었던 탓이기만 할까.

[이걸 마련하면서 혜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제밤 꿈에 신영우라는 그사람과 결혼하는 걸 봤는데...꿈은 반대라지?]

미수의 목소리는 처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든 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혜수가 헤매고 다니는 이유며 피붙이로서의 끈끈한 정을 한결같이 나누며살아갈 수 없게 된 까닭이며 그 모든 것을 기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듯. 미수는 다관을 들고 차를 따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밤이 이슥하도록 나는 거실에 불을 켜두었다. 블라우스를 있는대로 꺼내 다림질하고, 아이들 시험지도 매기고, 손톱 발톱도 깎았다. 얼굴에 오이를 붙이고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미수는 내가 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말했다.[언니, 혜수 말이야. 언젠가는 집으로 다시 돌아 오지 않을까? 하지만...오늘은...언니, 소용없을테니 기다리지 말자. 그리고...언니, 오늘만은 언니도어머니 옆에서 함께 자자]

나는 물기가 다 빠져 누글누글해진 오이를 얼굴에서 떼내고 자리에 누웠지만혜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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