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산속에서 생활을 오래해 일명 {성주타잔}으로 불렸던 정화웅(50)은 별 죄책감없이 경찰에서 담담히 말했다.
정씨는 지난 3월27일 새벽 1시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이임석할머니(72)집에서 이씨와 이씨의 아들 전익수씨(43)를 살해한 혐의로 3개월여간 산중도피생활을 하다 이달초 경찰에 검거됐었다.
정씨는 지난 1월초 이할머니를 성추행하면서 집안 기물을 부수는 소란을 피운후 이씨가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는 데다 틈틈이 이들을 위해 농사일을 거들어주었으나 일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하여 감정을 품어오던 중 이같은 범행을저질렀다.
정씨의 인생은 동가식서가숙하는 떠돌이 인생 그 자체였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주위의 무관심으로 그때 그때 연명하면서 고향일대를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이어왔다.
고향사람들과는 비교적 원만히 잘 지냈으나 죽은 이씨를 포함한 몇몇 사람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이들에 대해 {죽이겠다}는 말을 수시로 해왔다.광복직전인 44년 일본에서 태어난 정씨는 5세때 가족과 함께 고향인 성주군초전면 문덕리로 돌아왔다. 조모와 아버지, 어머니 장모씨, 1살 아래인 여동생 정숙자(가명)를 비롯, 2명의 삼촌과 그 가족이 고향에 정착했다.고향에 돌아와도 땅 한 뼘 가진 것이 없는 정화웅의 가족은 남의 집 일을 해주며 겨우 먹고 살기에 바빴다. 남의 집에 들어가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머슴살이를 했다. 고향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는 개가하면서 자취를 감춰버렸고 이로 인해 조모가 밥을 얻어먹이면서 정화웅 남매를 키웠다.
먹고 살기에 급급해 아버지는 아들의 학교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이들부자들은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머슴살이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느덧 성년이 된 정화웅에게 입대영장이 나왔으나 정화웅은 이 무렵 성주와 칠곡, 구미등지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했기에 입대영장이 나온 줄도 몰랐다. 정화웅은 남의 집에 한달이나 다섯달, 혹은 1년 단위로 머물면서 머슴생활을 했다. 앞날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결혼해 아늑한 가정을 꾸미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자 동생집에 얹혀 살다가 성주 수륜 소망원에 들어가 지난 87년 병사했다. 여동생은 팔려가는 처지 비슷하게 전라도로 시집을 갔다가시어머니의 구박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온 뒤 몇 남자와 동거하다가 지금은강원도 원주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웅은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살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부음을 전해듣지 못했고 여동생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몰랐다.
정화웅은 지난 82년부터 교도소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5차례 절도로 교도소를 드나들었으며 88년 4월에는 친하게 지내던 송모씨와다투다 밀어서 넘어뜨려 숨지게 해 상해치사죄로 복역을 하는 등 5년6개월간차디찬 감방생활을 했다.
92년 10월 교도소를 나온 후부터 정화웅은 산중생활에 접어들었다. 해발 7백-9백m의 인근 방울암산, 서진산 등지에서 텐트를 쳐놓고 봄 여름에는 뱀, 겨울에는 산짐승을 잡은 후 자전거를 이용해 왜관 약목 구미 등지에 가서 잡은짐승을 팔아 술, 담배, 라면, 돼지고기등을 사먹었다. 10여군데의 은신처를만들어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가운데 이따금 예전처럼 남의 집일을 거들어주면서 생활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일을 도와주면 어디서 생활하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보이다가도 떠나면 갔으려니 하고 잊고 지냈다. 이 무렵 정화웅은 가끔 마을에내려와서 술을 먹으면 죽은 이임석씨와 이씨의 동생, 최모씨(68), 한모씨(70)등 4명을 죽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댔다. 이들에 대해서 정화웅이 감정을 품은 이유는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일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것등 이었다.
사건 발생 하루전에는 야전삽으로 최씨를 때리며 죽이겠다고 흥분한 일도 있었다. 정
화웅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마을에 자주 나타났으나 주민들의 늑장신고와경찰의 출동지연등으로 조기검거에 실패했다.
경찰에서 정화웅은 비정상적인 생활을 한 사람답지 않게 말도 잘 하고 비교적 평범한 모습이었다. 고집스런 면과 자존심도 있었으나 죄책감은 찾아볼 수없었다는 것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의 말이다. 주민들과도 대체로 잘 지낸 편이었으나 자신이 감정을 품은 사람들의 생명 존엄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아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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