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선인장 이야기(96)

자, 이것이 그해 여름 내게 일어난 일이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소설을끝냈다. 어쨌든 나는 소설을 끝낸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긴 글을,그것도 어설프긴 하나마 형식을 갖춘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고 의아했다. 차를 한잔 마실겸 해서 잠시 책상에서 일어난 일외엔 꼬박 책상에 앉아 있긴 했지만 이 글을 끝맺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나는 내가 쓴 소설의 미진한 면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소설의 뒷부분에 잇대어 생각을 흘렸다. 이렇게 잠시, 머무는 거겠지. 모든 관계와 관계속에 김지수라는 존재로 하나의 이름을 빌려서 살다가 가는 거겠지.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이렇게 살아가는 그 이전과 이후는 캄캄한 어둠과 침묵에 잠겨 있고, 나는 이렇게 아주 잠시 빛속을 살다가 가는 거겠지. 한 걸음 한 걸음 세월속을걸어 그 한없는 어두움과 침묵의 심연속으로 가는 거겠지. 그런 삶이겠지...... 나는 허리가 약간 곱아 오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속말을 했다.[지수 자니? 학교 안 가?]

압력 밥솥 돌아가는 소리가 수돗물 트는 소리와 함께 들리더니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나의 방문 앞에서 재우쳐 깨우셨다. 새벽잠 없으신 어머니는 벌써부터 화분에 물을 준다, 성경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는다, 한달분 세금을 계산한다 하시며 갖가지 일을 다 해 놓고 계실 터였다. 왔다갔다 하시는 소리에도나는 기척을 내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서도 새삼 저렇게 깨우는 척 해 보시는 중이었다.

거의 사십년이나 된 시간을 나는 집을 떠나본 적도 별로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으니 우리 모녀 관계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밀착되어 있는데도 최근 몇년 사이 어머니는 저런 식으로 나를 얼마간 거리를 두고 대하셨다. 마치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대하듯,잠시 머물기 위해 있는 손님을 대하듯 함부로 나의 방문을 여는 법이 없었다.조심스럽게 나를 대하는 그 태도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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