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잉크의 시간-13큰오빠에겐 좀 미안한 소리지만, 난 큰오빠같이 자기 중심적이고 허점투성이인 그런 남자는 딱 질색이다. 큰오빠는 여자 친구도 많다. 얼마나 보추 없이사귀는지 만날 때마다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살아 계셨을 때 어머니도 늘 그 점을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나 작은 오빠는 달랐다. 내가 작은 오빠를 편애하는 것도 어쩌면 큰오빠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은유가 부럽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앞에도 작은 오빠와 같은 그런 남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작은오빠처럼집안에 꼭꼭 숨어 있지만 그도 성숙하여 사랑할 나이가 되면 한떨기 흐드러진 모란처럼 내 앞에 선연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그때까지 나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가 나를 발견하는 순간 첫눈에 입이 벙긋해지도록 나는 지금부터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 마치 한 땀 한땀 수를 놓듯이 내 얼굴을 조각하고 내 마음을 가공하고 내 영혼을 투명하게길러야 한다.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결코 슬픔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애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다고 말하는 걔네들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그게 왜 비정상적인가.

나는 지금도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성적표를 내 주면서 담임선생님께서 특별히 나를 일으켜세웠던 것이다. 그런 충격 속에서도 성적이 내려 가기는 커녕 되레 올랐다고. 아이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었다.

만일 걔네들이 나의어머니 일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안다면 {이상한 애}가 아니라 숫제 {무서운 애}라고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어머니가 단순히 병으로 돌아가신 줄로만 안다. 물론 담임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신다. 내막을 아는 이는 오직 은유뿐이다. 어느 날 내가 은유에게 그 사실을죄다 말해 주었었다.

그들은 모른다. 용수철은 누를수록 옹골차게 튀어오른다는 사실을. 나는 그런 애다. 내 가슴에 슬픔이 필수록 나는 악착같이 책에 매달렸다. 그것만이나의 꿈을 키워주는 열쇠임을 아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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