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세풍-한 공직자의 몰락

유난히도 무덥고 길었던 여름이 처서를 지나면서 초가을날씨로 바뀌었다.전력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제한송전위기까지 갔던 폭염도 갔고 현대중공업노사분규도 타결됐다. 이제 시원해야할 계절에 전력과 노사분규와도 무관치않은 한공직자의 몰락을 지켜보는 심정은 한여름만큼 답답하고 안타깝기까지하다.**화려한 등장**

화려한 등장에 비해 몰락이 너무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기 때문이다.한국최고의 명문인 경기고와 서울대출신에 포철사장, 한국중공업사장, 상공부장관, 한전사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안병화씨. 지금은 국민의 눈밖에 난 령어의 몸이지만 국민들의 기대속에 화려하게 공직에 등장했다. 공직이라곤 모교에서 잠시 영어교사를 했을뿐 대한중석을 거쳐 포철에서 잔뼈가굵어 포항제철사장과 한국중공업사장을 거치는 등 제철업계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대성한 실업인이었다. 특히 동부제강(구일신제강)과 한국중공업사장시절발군의 실력을 발휘,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두회사를 일시에 흑자기업으로 전환. 탁월한 경영인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한국중공업사장시절인 87년 노태우후보의 6.29선언후 민주화물결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전업종에 걸쳐 극심한 노사분규에 휩쓸리면서 그의 실력은 더욱 돋보였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등 대기업의 노사분규가 극에 달해 공권력투입과 직장폐쇄등 악순환을 거듭할때도 한국중공업만은 잠시 파업에 들어갔을뿐 탁월한 솜씨로 사태를 수습,단기간에 정상화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88년 경영인으로서는 최초로 상공부장관에 발탁되는행운을 안았다. 자유당시절 이승만대통령이 민성함을 통해 농림부장관을 발탁한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상공장관입각후 전국의 매스컴은 {부실한국중공업정상화의 주역} 또는 {제철업계서 지낸 전문경영인}이란 타이틀로 신임장관의 상공행정에 큰 기대를 걸기도 했다.

취임기자회견에서는 환경과 여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선견성과 기동성을 갖춰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듯이 정부의 경제정책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서 화려한 데뷔를 했다.

**적극적 완벽주의자**

매사에 적극적이면서 무슨일이 있어도 할일을 해내는 완벽주의자, 해외여행중에도 호텔방에서 항상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는 찬사에도 불구 1년 채안된상공장관재직중에는 평범한 장관으로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89년 한전사장으로 다시 공기업의 수장을 맡으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4년3개월(89년1월-93년3월)의 재임기간동안 월성3.4호기 울진3.4호기등 원전4기와 화력 열병합발전소등 모두 17건의 덩치 큰 발전소건설공사를 발주하면서 전력난 해결에 노력하는 사장의 이미지를 심었다. 한전사람들은 뭐니 뭐니해도 재임중 발전소 발주를 많이하는 사장이 제일이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덩치큰 건설공사를 많이해야 사장으로서 힘을 줄 수 있고 떡고물을 챙길수도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으로 몰락의 길을 걸을줄은 본인도 몰랐을것이다.

**뇌물받고 사정칼 맞아**

{매사에 적극적인 완벽주의자}로 화려하게 공직에 등장했던 전문경영인. 지금은 원전공사와 관련, 대기업회장으로부터 수억원씩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혐의로 사정의 칼을 맞고 몰락하고 있다. 뭇사람들의 조소와 함께 데뷔시절의 찬사와는 반대로 권력에 순종하는 형, 친화력과 리더십부족, 격려할줄 모르는 권위주의자라는 악담속에 전공직자에게까지 누를 끼쳤다. 한전사장이 이정도면 상공장관시절에는 어땠는지? 역대장관과 한전사장도 물론 많은 비리가 있을것이란 추측이 난무한다. 새정부출범이후 안씨외에도 수많은 공직자들이 안씨와 같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도 많은 공직자들의 부정과 비리가 끊일줄 모르니 애석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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