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타인의 시간(29)

어머니는 주방과 화장실 사이에 있는 {검은 방}에서 돌아가셨다. 지금은 폐문이 되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그 무렵에는 세 들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방 수리한다고 그 문을 터놓고 있었었다. 우리가 아침에 아버지의 오열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달려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이승의 끈을 놓아 버린 뒤였다.잠옷바람이었고, 머리맡에는 수면제 아모바르비탈 정제가 든 약병과 우리사남매 앞으로 보내는 각각의 유서가 놓여 있었다. 전날 밤까지도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였기에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작년에 어머니는 궤양성 심내막염을 앓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후 증세가 안 좋았던지 가끔 통원 치료를 받으러 병원엘 다니긴 했지만 그것이 어머니를 절망시킬 만큼 그렇게 심각했던 것도 아니었다.어머니는 결벽증이 유별나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아버지의 병이나 자신의 병이 전염병이 아님에도 우리들의 식기와 자신들의 식기를 엄히 구분하셨다. 병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못 말려]하고 비웃었다. 그토록 완벽한 어머니를무엇이 절망으로 몰아 넣었을까. 우리는 아직도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있었다.한때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선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왜 사람들은 생각이 나팔꽃마냥 나쁜 쪽으로만 넌출넌출 뻗어 오르는 걸까. 말도안되는 수군거림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어머니가 사막한 놈팡이에게 된통 걸렸을 거라는 것이었다. 잘생긴, 남동생이라는사람과 함께 몇 번 외출하는 것도 보았고, 어머니가 급하게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것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근거리면서 틀림없이 그 나쁜 인간에게시달리다 못해 약을 먹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 그 잔인한 능멸이여. 정갈하고 정숙하기가 목련꽃 같았던 어머니에게그런 끔찍한 치욕의 멍에를 씌우다니. 나는 그날 밤 이층에 올라가 바람에쓸려 다니던 어둠이 보라빛으로 투명해질 때까지 서럽게 웅크리고 있었다.그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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