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어서 날이라도 밝았으면 좋겠다.밝은 햇살과 은유를 보면 내 마음속에 고여있는 서러운 감정은 모새처럼 잔잔히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한때는 밤이 아늑하고 정겨웠던 시절도 있었다. 넉넉히 눈이 쏟아지는 밤이아니라도 공부를 하다가 어머니가 사다 주신 군고구마의 껍질을 벗겨 노릇노릇한 속살을 베어 먹으면 그때의 밤은 밤이 아니라 그대로 꿈이요, 행복이었다. 언니와 나는 서로 큰 것을 먹으려고 자주 토닥거렸고, 그것이 꼬투리가되어 며칠씩 말을 안하고 지내기도 했다.그래도 언니는 마음이 덜퍽져 차마체면상 먼저 말을 붙이지는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슬쩍 화해의 다리를걸쳐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더욱 부아가 돋아 쌔근거리며 팩 돌아눕곤했다. 언니는 그것이 재밌다는 듯이 더욱 바투 다가 누우며 집적거렸고,견디다 못한 나는 베개를 보듬고 일어나 언니가 잠들 때까지 벽에 등을 기대고옹송그리고 앉아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어쩌다 그런 꼴불견을 보시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금세 우리가 다툰 빌미를눈치채시고 혀를 끌끌 차며 다짐하시곤 했다.

[너희들은 어째 마주치면 싸우니, 그래. 승희 너도 그렇다. 지금 승혜하고싸울 나이니. 다시는 뭘 사주는가 봐라]

그러나 어머니의 그런 다짐도 며칠을 못 넘기시고 시장에서 만두나 과일을사 오셔서는, 얘들아 이것 좀 먹을래, 하며 공부하는 우리들을 주방으로 불러내곤 했다.

특히 공휴일 전날이나 토요일 밤은 여유로워서 좋았다. 늦잠을 자도 된다는푸근함 때문에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워지고, 일찍 자면 괜히 손해 보는 것같아 라디오도 듣고 책도 보고 텔레비전의 주말 명화도 보다가 이윽고 잠자리에 들면 등으로 전해 오던 풍성한 밤. 그런 날일수록 까닭 없이 일찍 눈이떠져 속이 상하던 밤. 차츰 자라서는 숙제와 성적의 부담감 때문에 그런 기분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정겹고, 아름다운 밤풍경과 반짝이는 별 그리고 투명한 어둠을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흥겹던 밤. 그렇게 우리는 달처럼 밤을 먹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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