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붕중국총리 방한결산

이붕중국총리의 방한은 동북아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격변기를 맞아 한중양국간의 이해를 상호조율하고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구조정착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한국측으로서는 강택민국가주석이 방한하지않은데 대한 섭섭함을 감추고있긴 하지만 이총리 방한을 계기로 양국이 지난 3월 한중정상회담에서 합의한산업협력방안을 구체화한 데 이어 원자력분야 협력까지 나아가는등 양국간실질협력 수준을 한차원 격상시킨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러나 이총리를 비롯한 중국측 인사들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등 중국이 철저한 남북한 등거리정책을 펴고 있음을 실증해 주기도 했다.

이총리의 방한은 이렇듯 적잖은 성과와 함께 한중관계에 있어서는 새로운과제를 남겨 놓았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일성사망과 미.북핵협상 타결이후 한반도 외교.안보환경이 불투명한 가운데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 양측이 지난달 21일 제네바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남북간의 대화가 필수적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한참 경제발전을 서두르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인접지역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자국의 이해와 직결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중국측은 이총리의 방한중 한반도가 현재의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적어도 공식으로는 우리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내세우면서 이에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같은 미묘한 주장을 계속 내미는 것은 우리 정부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정부의 입장을 잘 알면서도 외교부대변인이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두차례씩이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강조한 것은 다소 엉거주춤한 우리측에 빨리과거 냉전적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 자세로 나오라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다.북한의 주장대로 평화협정 체결을 미.북간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평화체제의 구축은 자국의 이해로 볼 때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중국측은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중요성과 필요함을 여러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전그침 중국외교부장은 2일 양국외무장관 회담에서 한승주외무장관에게 "남북화해와 대화없이는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문제의 원만한 해결이 어렵다"고밝혔다.

전통적으로 북한이 남북대화에 소극적이고 특히 김주석 사후 우리의 대응을문제삼아 이를 극도로 기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의 이같은 언급은북한의 자세를 겨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은 남한에게는 평화체제 전환을 주문하고 북한에게는 남북당사자 원칙에 입각한 문제의 해결을 주문하고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국내 일각에서 중국이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한듯한 행동을 한 것과 관련,강한 비판론이 일고는 있지만 이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의 대한정책의 대강을 확인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이총리가 중국의 정상급 인사로선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했다는 의미외에 김주석 사후 김정일체제가 아직 공식화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한을 먼저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지니는 무게가 적지 않다.

북.중관계가 비록 수십년간에 걸친 {혈맹이고 한중관계가 2년여에 지나지 않지만 남한을 방문, 산업협력등의 구체화 작업과 함께 원자력분야 협력을 약속하는 등의 행동은 북한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원자력협력의 경우 대체로 주요 우방국끼리 신중하게 맺어오는게 국제적 통례라고 할 때 한중 양국이 이번에 원자력협력협정을 정식 체결했다는것은 양국관계의 성숙도를 단적으로 입증하는 사례이다.

이총리가 김영삼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국회의장및 여야지도자 면담을 서둘러마무리짓고 대부분의 시간을 재계인사 면담과 산업시찰로 보낸 것도 이같은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전국에 퍼져 있는 삼성 현대 대우등 한국의 대표적 기업의 자동차 전자중공업 반도체공장을 두루 방문, 마치 경제조사단과 같은 활동을 벌인데서도중국측의 경제에 대한 의욕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이총리의 방한은 미.북 핵타결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안정을 유지하면서 경협등 실질협력 분야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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