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 타인의시간 (99) 도도의 새벽

갑자기 언니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능청을 떨고 있어도 가슴속은 갈가리 찢어져 꺼멓게 울혈이 맺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울컥 설움이 목젖을 짓눌렀다.나는 언니 쪽으로 돌아누웠다. 언니가 나를 껴안았다. 언니의 가슴속은 간단없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듯 허옇게 찰싹이고 있었다. 언니가 내몸을 샅샅이 매만져보고 있었다. 내 얼굴도 만져보고 내 젖가슴도 만져보고있었다. 마치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그러면서 언니는 속울음을 지우고 있었다.

나의 눈에서도 조금씩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 은유와의 만남도 마지막이구나 생각하자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올랐다. 설령 은유는그럴 마음이 아니라도 은유의 부모님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나와의 만남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히 감시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또 어떻고. 나를 경원하는 수천 개의 눈망울들. 내 옆자리에는 숫제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망상에까지 이르자, 그처럼 갈망했던 햇살이 이제는 섬뜩한 무기처럼 느껴졌다.

"울고 있구나. 두렵니?"

언니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언니,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기어이 울먹이고 말았다. 언니가 어르듯 내 등을 다독거렸다."운명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아?"

내 물음에는 대꾸없이 언니가 되물었다.

"승혜야, 너 날 좋아하니?"

"응"

"그럼 내 말을 들을 수 있겠니?"

"뭐든지 말해"

내가 자신있게 말했고, 그런 나를 언니는 다시 한번 힘껏 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그럼, 성우랑 부산 고모 집으로 내려가. 그 동안 성우하고 네가 우리 집을지켜왔잖니. 이제 임무를 교대하는 거야. 광우하고 내가 우리 집을 지킬게.비밀이란 탄로나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건 말도 안돼"

내가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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