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월1일 통합 경북10개군 표정

내년 1월1일자로 경북도내 10개 통합시가 출범함에 따라 인접10개군이 사라지게 됐다. 통합지역 군민들은 그동안 자기 고장에 얽힌 숱한 애환과 자부심을 되뇌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역사속에 묻혀질 통합군의 변천과정과 통합시에 바라는 군민들의 소리를 들어본다.----경 산----

경산은 삼한시대 변진의 일국인 압량소국(일명 압독국)의 옛터로서 신라때압량주로 되었다가 고려때는 장산으로 개칭하면서 현으로 강등됐다.경산군은 고려 공양왕 3년(1391년)왕비 노씨가 태어난 고장이다 하여 군으로다시 승격됐으나 조선조 태종4년(1395년)에 다시 현으로 격하됐다가 선조34년(1601년)에 대구로 소속됐으나 1914년 3월 부군(부군)통합때 하양.자인 2개군과 신령군 남산면의 일부를 합병시켜 11개읍면으로 된 경산군이 탄생했다.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으로 경산군의 노른자위인 고산면과 안심읍이 떨어져나간데 이어 경산읍이 시로(1989년)승격, 시.군이 분리되면서 면적으로는 경북도내서 울릉군 다음으로 작은 군이 됐다.

[통합이라지만 느낌으로는 군이 시에 병합되는 것같은 기분이다]고 말하는일부군민들은 아쉬워 하고있으나 원효대사 설총 일연선사 3성인을 낳은 뿌리깊은 고장의 긍지를 갖고 출범하는 통합경산시에 대해 시군민의 기대도 크다고 했다.

----경 주----

경주군은 진한 12국중 사로국으로서 씨족사회로 구성되어오다 서기전 57년에국호를 서라벌이라 부르는 신라를 개국하게 됐다.

고려태조 23년(서기940년)에 지명을 경주로 정한후 도독부가 들어서면서 지명이 동경으로 바뀌었다가 고려현종때 경주로 굳혀졌다.

55년 경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월성군이 된후 지난 89년 경주군으로 다시환원돼 오늘에 이르게 됐다.

역사적인 시.군통합을 앞둔 군민들은 공통점이 많은 같은 역사도시로서 통합을 환영하지만 40년간 귀에익은 군명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돼 아쉽다는 표정이다.

지난 90년3월 창간호를 발간한후 4년간 31호를 낸 경주군보마저 시보로 이름이바뀌게 되자 군민들은 허전한 느낌마저 든다고 했다.

이상렬씨(71.경주군 외동읍 괘릉리)는 [군간판을 내려야할 아쉬운일들이 많지만 차제에 경주는 문화특별시가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금 릉----

금릉군민들은 통합김천시가 발족됨에 따라 오랜 역사를 지닌 금릉이란 지명이 없어지는데 대해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릉군청 직원들은 시군통합이 자칫 금릉군의 뿌리를 잃게 만들지 않나해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금릉이란 지명은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녹 지리지}(1454년)에 금산군의 별호로 나오고 {신증동국여지승람}(1481년)에는 군현의 옛이름(군명)을 적으면서금산군의 군명을 금능이라 했으며 개녕현의 군명은 감문.청주라 했고 지례현의 군명은 구성이라 불렀으나 이는 옛날 어느때 금산군을 금릉이라 했는지 또는 별칭으로 금능이라 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행정구역의 정식명칭으로 금능군이라 한 것은 1949년 김천시가 김천군(김산군, 지례군, 개녕군의 통합명칭)으로부터 분리되면서 김천시를 제외한 여타지역을 김능군이라 했다.

금릉군에는 주요관광명소로 직지사와 청암사, 수도사, 구남천, 추풍령휴게소가 있으며 부항면 파천리에 온천수개발지구로 지정을 받아 온천수개발사업이한창 추진중에 있다.

----문 경----

1895년 문경군으로 출발, 1백년만에 군의 깃발을 내리고 9년전 분리된 점촌시와 통합, 문경시로 되자 문경군민들은 섭섭하지만 군지명을 그대로 사용,다소 위안이 된다며 통합시에대해 크게 기대하는 모습이다.군민들의 발길이 끊이지않았던 군 청사는 문경시의회 임시청사로돼 지난68년청사를 신축, 자리잡은지 27년만에 군청현판이 사라지게 됐다.군민들은 [지난86년 점촌읍을 시로 승격시켜 분리시킬때 서로가 획기적인 발전을 기약하고 벅찬 감격과 자랑스러움이 있었다]며 [이번 통합을 계기로 폐광충격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션결과제]라고 주장했다.

탄광촌으로 급성장하면서 풍요의 문경군민들은 이번 시군통합으로 과거 풍요의 도시라는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삿짐을 챙기는 군청 직원들은 점촌시 청사가 새 문경시청사로돼 한동안은남의 집에 들어서는 서먹함을 펼치지 못할것이라고 말하기도.2읍7면의 5만2천명 군민들에게는 문경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상 주----

지난 86년 상주군이 시.군으로 분리된후 9년만에 다시 시로 통합되자 일부군민들은 지역간의 이질감.갈등 해소를 위한 화합차원의 통합은 바람직하지만상주군의 역사적 유래를 감안할때 아쉬움이 남는다는 표정들이다.상주군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상주로 명명된후 역사적 유래가 깊은곶감.누에.쌀등 삼백(삼백)의 고장으로 맥을 이어왔다.

군민들은 선비의 고장 상주군에서 시가 분리된후 이번엔 군이 시로 통합돼도.농형태의 균형발전이란 전제아래 옛것을 기초로 새것을 창조한다는 발전적통합을 이뤄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군내엔 국립공원 문장대.문장대온천.국민관광휴양지 경천대.정기룡장군유적지.사벌왕릉등 수려한 관광지와 유적지가 많아 앞으로 관광도시 상주를건설해야 한다는 군민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분출되고 있다.----선 산----

{조선인세 반재영남, 영남인세 반재선산}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된 이말은 선산인이라면 누구나 다 외우고 있으며 가장 자랑스레 사용해온 말이다. 그만큼 선산군민들은 선산에 대해 역사와 인물의 고장이라는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신라불교의 발상지이며 성리학을 일으킨 유서깊은 고장 선산이 며칠후면 구미시로 바뀌어지게 돼 이지역 노년층 주민들은 평소 애써 자제해오다가도 마을마다 주민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일때면 [고향을 잃었다]며 섭섭한 감정을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내 통합대상지역중 명칭문제로 가장 극심한 진통을 겪었으며 통합결정후에도 군민들은 [구미시는 선산에서 분리된 지역이며 원뿌리는 선산]이란 자부심을 버리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간직해온 선산을 늘상 되뇌게 될 것으로보인다.

----안 동----

안동부라는 명칭이 처음 쓰여진것은 고려때인 서기930년 이였고 안동군 명칭이 쓰여진것은 1896년으로 군만을 놓고보면 꼭 99년만에 이름을 잃게된다.안동군은 현재의 청사 뒤편 뜰에 군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비문을 마련해 29일제막할 예정으로 있다.

비문 마지막 구절을 보면 [이제 안동의 발전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웅부 안동의 터전을 옮겨가야 함에 해와 달이 지나도 영원히 이곳을 잊지않도록군민의 뜻을 모아 비를 세워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로 돼있다.매화.먹황새.은행나무를 상징물로 정했던 안동군은 예부터 의리에 밝고 도학을 소중히 여기는 유서깊은 유교문화의 고을로 조선조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이황선생등 명현 석학들을 수없이 배출한 고장으로 사적170호인 도산서원과주요민족122호인 화회마을등 수많은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김숙동 안동군 내무과장은 [주민은 물론 공무원들도 하루빨리 시.군이라는이질감을 씻어내고 화합된 모습으로 지역 발전을 앞당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 일----

일제때인 1914년3월 부.군폐합으로 영일군이 생긴후 80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됐다.

영일(영일)이란 지명은 공식적으로 고려초부터 호칭되었으나 삼국유사등에영일(영일).연일(연일)이란 명칭이 보이고 있는것으로 보아, 영일군의 역사는신라때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지금의 포항시가 영일군에서 떨어져나간만큼, 통합포항시의 명칭을 영일시로해야한다는 주장도 지역 향토사가들사이에서 끈질기게 제기되고있다.이와함께 통합포항시의 명칭이 포항시로 된이상, 구청명칭만이라도 북쪽을흥해구(현 북구로 확정), 남쪽을 영일구(남구)로 해야한다는 지역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영 천----

영천군 명칭은 조선시대 태종14년부터 불려온것으로 기록돼있다.영천군은 6백여년이란 긴 세월동안 애환과 더불어 충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영천군은 또 임진왜란당시 부산포를 거쳐 물밀듯 내려오는 소서행장을 맞아분투한 권응수의병장등 의병군이 많아 충의의 고장으로도 소문나 있다.역사적 문물로는 정몽주의 임고서원을 비롯, 은해사가 유명하다.이고장의 향토사학가 안재진씨(56)는 [고난의 민족사에 피로써 지켜온 충절의 고장, 영천군이란 이름이 사라질날도 며칠 남지않아 영고성쇠를 보는것같아 가슴이 저민다]고 감회에 젖는다.

----영 풍----

영풍군은 14년만에 다시 시와 합병하게돼 폭넓은 개발이 이루어질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민들은 이제 행정이 도시(영주시)는 전원화로, 농촌(영풍군)은 도시화로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고있다.

영풍군이 시로 편입되면서 군민들은 20여개단체장의 대부분이 시단체장들이유임 또는 선임될 기미를 보이자 시민위주의 행정이 되지않느냐는 의아심도많다.

그러나 소백산주변 많은 관광자원을 토대로 관광개발이 급속도로 이루어질것으로 믿고있다.

특히 중앙고속도로와 대구-영주(풍기)간 국도가 확장되면서 2개의 IC가 설치될 풍기읍과 봉양면일대는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땅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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