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시풍속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농촌 중심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전승돼 오던 온갖 세시풍속들이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살아남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30대 후반 이후의 세대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 설.추석.단오등 연중 행해지는 세시명절에 즐긴 숱한 놀이등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제우리가 찾아가는 고향에는 더이상 생활속에 녹아들어 따뜻하며 공동체 의식으로 일체화된 정겨운 세시풍속은 남아 있지 않다. 70년대 이후의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물결 속에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등 나이많은 일부 세대에나, 설.추석등 일부 큰 명절 풍속속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가정주부 김명희씨(36.대구시 북구 복현동)는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섣달그믐날 밤이면 온 가족, 온 마을 사람들이 잠을 자지 않고 자정을 맞이했어요.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지켜서 기다린다고 해서 수세(수세)로불렀는데 아이들은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해서 자정까지 참고 견뎠지요. 이 날은 또 집집마다 방방이, 화장실까지 불을 밝혀 밤을 지샌 것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요라며 화를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이같은 풍속에 그리움을나타냈다. 설날 새벽에 복조리를 사서 부엌이나 방구석의 천장에 달아매 한해 풍년이 들고 재화가 들지 않기를 비는 것도 6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희귀한 모습이 됐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설빔 단장에 마음이 설레는 아이들은 이제 찾기 힘들며 제기차기 연날리기널뛰기 팽이치기 윷놀이등 갖가지 놀이는 전자오락, 컴퓨터 게임으로 대체된지 오래다. 김방우씨(43.경북 경산시 동부동)는 70년대까진 정월에 온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복판에 있는 당수나무에 당제를 지내고 농사를 잘지은 집이나 부잣집을 찾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해 복을 주는 한편 걸판지게한 판 노는 행사가 있었지요. 또 경계가 되는 마을의 청소년간에 돌싸움을벌여 자웅을 겨루면서 단결과 협동을 과시하기도 했지요라며 사라진 공동체적 의식들을 아쉬워했다.18세기에 편찬된 동국세시기(동국세시기)는 당시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1백85종을 소개하고 있는데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해방 이후에도 2백종에 이르는세시 풍속, 이와 연관된 민속놀이들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졌다고 한다.그러나 80년대 이후 농촌 사회의 와해 등으로 설, 추석등과 연관된 차례,성묘등만 살아남아 있는 형편으로 그나마 최근에는 갈수록 형식으로 치우치는느낌을 주고 있고 이를 나타내듯 명절 연휴 각 휴양지엔 행락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설날에 친척.나이많은 동네어른 찾아뵙기등 미풍양속은 새마을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70년대 이후 뜸해지다 최근엔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고있다.

개인주의와 편의 위주의 사회상을 반영, 최근 들어선 떡국이나 송편을 집에서 빚는 경우도 보기 힘들게 됐다.

서양력인 태양력의 보편화로 국정공휴일, 주말등과 관련, 새로운 양력 세시풍속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현상이다. 을해년(을해년)등60간지에 의한 해 이름 붙이기나 십이간지에 따른 띠 이름 붙이기는 음력에따른것인데 양력 12월 31일 서울의 보신각종등 각 지역 종각에서 종을 자정에 타종하면서 간지에 의한 새해로 혼동 명명하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이에 더해 이제 신식 섣달 그믐은 집안에서 차분하게 밤을 새우며 경건한 마음으로 사(사)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받아들인다는 전래의 의미는 탈색된 채 잘못 받아들여진서양식의 떠들썩한 유희와 흥분, 방종의 분위기가 한껏고조돼 있다. 나이트클럽, 회관, 술집, 노래방등이 연말 모임으로 자리가완전히 동나고 있는 것이이같은 세태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손두석 대구향교 전교는 세시풍속 중에는 조상 숭배, 부모.어른 공경이나협동심등 현대 사회 속에서도 존속시켜 나가야 할 가치있는 덕목들이 많다며 현대적 수용이 가능한 것은 발전적 계승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