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내부에서 무엇이 녹고 있었던 것이다.얼굴은 어둡게 일그러져 있었지만
녹으면서 뿜어나오는 빛으로 내부는 환했을 것이다.
(중략)
녹아 서서히 액체로 변해가는 동안
무거운 것들은 점점 그를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녹은 만큼 그는 가벼워지게 될 것이다.
가벼워진 만큼 내부에 둥글고 빈 자리가 생기게 될 것이다.그 텅 빈 자리가 넓으면 넓을수록
더 많은 공기와 빛과 바람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어떠한 충격이나 욕설이나 소음이 들어가더라도
거기엔 단지 공기와 빛과 바람만이 살게 될 것이다.
-'울음'
울음은 세계의 불안을 극복하고 넉넉하고 빈 곳으로 가려는 자아의 현실적인통로이다. (세계의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려는 김기택 시의 이미지는울음 이외에도 잠, 씨앗, 구석의 이미지가 있다.
〈이 겨울엔 다만 씨앗으로 남아/ 산 구석구석 죽은 듯이 숨쉬고 있다… …나는 애써 추위에 단련된 뼈를 웅크려 잠을 잔다〉-'겨울산', 〈등에 커다란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태아의 잠') 그 공간은 하루하루 맑아지고 진해진 눈물로 익은, 어둠과 빛, 무거움과 가벼움의 이미지를 외곽에 깔면서 이끌어낸 하나의 공간이다. 딱딱하고 무거운 몸을 녹일 때 녹아서 가벼워진 만큼 내부에 생긴 환하고 둥글고빈 자리는 충격과 욕설과 소음을 걸러낸다. 그 세계는 공기와 빛과 바람의움직임만이 고요하게 출렁이는, 비어 있으므로 가득차 있는 세계이다. 웅크림으로 그윽한 그 깊이는 맑고 환한 기운, 비어 있는 근원이 뿜어 내는 투명하고 맑은 울림과 빛깔을 동반한다. 지배적 생존욕의 거친 숨결을 웅크린 안온함으로 감싸는 그 공간에는 가득찬 넉넉함은 우리에게 위안과 풍요로움을주면서 행복한 몽상을 일구어내기에 충분하다.
생명을 변질시키려는 난폭한 힘을 견뎌낸 가장 이상적인 모형을 시인은 뱀을통해 띄운다.
가벼워라 아아 편안하여라
팔과 다리 털과 꼬리 모든 것이 생략되고
한줄의 긴 몸으로 단순화되니
머리와 심장으로 언제나 땅을 만질 수 있고
마음껏 땅의 차가운 힘을 만질 수 있고
그 즐거움으로 독은 더욱 올라 꼿꼿하게 날이 서는구나
나무처럼 땅의 고요한 기운을 받아 숨쉬니
굶을수록 눈은 광채를 더하고
빠를수록 몸은 바람보다 소리가 작구나
번잡스럽게 바둥거리던 팔과 다리
그 몸에서 줄창 쏟아내는 비명과 아우성도
독으로 소화시키면 이내 형체를 버리고 열기과 소음도 버리고기꺼이 화사한 꽃비늘이 되는구나
-'뱀'
몸 속에 들끓고 있는 욕망의 도구인 팔과 다리, 꼬리가 생략되고 한줄의 몸으로 단순화된 뱀은 그 단순함으로 행복해진 존재의 모델이다. 독은 몸에서쏟아내는 비명과 아우성을 소화시키면서 날이 선다. 열기의 뜨거운 힘을 차가움의 푸른 힘으로 전이시키며 나무처럼 머리와 심장으로 땅을 만지며, 땅의 고요하고 차가운 기운을 마시는 뱀의 이미지는 독자에게 그 존재 상황을불러 일으킴으로써 존재론적인 성찰의 유혹을 느끼게 한다.김기택 시의 향기는 깨달음의 제시보다는 존재의 본질을 뚫는 지각의 새로움에 있다. 그런점에서 그는 미학주의자라 불릴만하다. 그는 의식의 곁에 일어난 기미며 움직임을 뢴트겐선처럼 띄우는 독자적인 상상력의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왔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현실을 배제하지 않는다. 시인은 먼지를 상상력의 최소질료로 그 이합집산의 과정을 미세하게따라가면서 인간존재의 내면과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을 성실하게 짚어냈다. 김기택의 시가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생명과 그 반대편에서 생명을 변질시키려는 난폭한 힘과의 대결이다. 세계의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시인의 의도는 넉넉하고 빈 공간을 낳는다. 삶과 죽음, 어둠과 빛, 무거움과가벼움의 이미지를 외곽에 깔면서 마련한 그 넉넉한 공간은 독자에게 풍요로움과 함께 위안을 주고 존재론적인 성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세계는독자가 관여함으로써 완성되는 비어 있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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