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반세기 생활변천 50년-식생활

'그때를 아십니까'몇년전 모 방송을 통해 방영돼 40대이후 세대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렇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조명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우리가 저렇게 어려웠던 시절을거쳐 지금에 이르렀던가 싶을 정도로 흐릿한 흑백필름에 나타난 우리의 과거는 오직 '살아남기'만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기도 했다. 특히 그때는 '아침드셨습니까'가 인사말이 될 정도로 일용양식이 매매일의 걱정거리였고, '갱죽' '무시밥' '꿀꿀이죽'과 '보릿고개' '초근목피'가 보통명사가 될 만큼 굶기를 밥먹듯 하던 시대였다.

장윤재씨(66·대구시 달서구 성당동)는 "쑥이나 '싸래기'등을 섞어 밥을 지어 먹을 수만 있어도 괜찮은 형편이었고 아무리 먹어도 부황이 나지 않는'뚝갈'이나 '송기'같은 것을 먹는 사람이 많았지. 양을 늘리기 위해 좁쌀이나쌀을 갈아서 멀건 죽을 끓여 먹었고 벼가패기도 전에 거둬 '찐살'을 만들어먹다가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지"라고그 어렵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주식이 없는 형편에서 간식은 개념조차 없었고 다만 배가 고프니까 무엇이든 먹는다는 생각이 앞섰다. 밀겨울로 만든 '개떡'은 조리방법상 양식손실이많아 별미로 손꼽혔고 먹는 풀을 구하기 위해 산을 헤매다가 꿩알이라도 발견한 날은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영양실조는 다반사였지만 그나마 육체적으로 견딜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인 음식습관이라는 분석도 있다. 된장, 고추장, 김치의 탁월한 제조법에서 나타나는갖가지 영양소 섭취나 볶은 콩가루는 밥에 비벼먹고 날 콩가루는 냉이국이나시래기국에 풀어 먹었던 것이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던 지혜였다는 것이다.

서봉순교수(신일전문대.조리학)는 "먹을 것이 없었던 50~60년대에는 도토리와 '송기'등 구황식품으로 허기를 달랠수 밖에 없었고 '삐삐', 진달래 '올미',버들강아지를 찾아 산과 강으로 헤매고다니기도 했다"며 "70년대 초, 중반의감자 주식화운동이나 혼·분식장려,하루 한끼 분식운동도 당시의 식량사정을반증해 주지만 80년대에 들면서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입맛도 급격하게 서구화돼 각종 패스트푸드 전문점이 성황을 이루고 조리법도 끓이고 찌는 것 위주에서볶고 굽는 것으로 변했다"고되돌아 봤다. 이러했던 식량사정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극도에 달했고 진주 미군들에게 껌이나 초콜릿을 구걸하는 풍경은 어디서나 볼수 있었다. 56년부터 PL 480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무상공급 되면서 사정이조금 나아졌다. 주된 공급물자가 밀이었던 PL 480은 후에 우리의 농업경제를파탄시키고 입맛을 서구화로 길들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이로 인한 밀가루 소비운동은 70년대 박정희정권때의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잘살기 운동시대에 혼·분식 장려, 하루 한끼분식장려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때에 잊지못할 추억은'도시락 검사'였다. 선생님이 점심시간때 마다 회초리를 들고 혼·분식 여부를 검사했고, 생활기록에 반영되기도 했으며 어쩌다 계란부침개라도 들어있는 날엔 도시락 검사를계기로 친구들의 집중적인 젓가락 공세를 받았던 시절이기도 했다.63년에는 일본에서 유행하던 라면이 삼양식품에서 처음나와'후루룩, 후루룩,냠냠냠…'이라는 광고를 시작했지만 비싼가격(당시 10원)과 느끼한 맛으로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라면제조회사들은 고추, 쇠고기등 다양한수프로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라면을 개발해 75년에는 컵라면, 76년에는 라면자판기가 생길 정도로 대중화됐고 지금은 라면소비시장이 연 9천억원대에이르고 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정은 급격히 달라졌다. 식량의 자급자족은 85년이 돼서야 실현됐지만 주식보다는 부식, 혹은 기호식품의 다양화시대가 된것이다. 입맛의 서구화는 68년 코카콜라의 상륙, 70년 뷔페식당 첫개업, 77년 커피자판기로 이어졌고 79년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처음 선보임과 동시에햄버거등 인스턴트 식품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안먹어도 그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스낵류가 큰 인기를 끌고,'몬도가네 식성'으로 표현될만큼 보신식품이나 건강식품, 무공해 식품이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적풍요는 기본 체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직후인 53년 성인 한국 남녀의 신장은 1백66.46㎝, 1백54.82㎝ 였고 체중은 58.55㎏, 53.47㎏ 이었지만40년후인 지난 92년의 통계에 따르면 1백71.0㎝, 66.7㎏(남자), 1백59.3㎝,54.9㎏(여자)으로 크게 늘어났다.

광복후 50년동안 '우리의 입'은 철저하게 서구화돼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피자, 햄버거, 라면이 현 세대에게 최고의 기호식품이됐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굶고 유아비만이문제가 되는 시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는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불균형한 영양섭취로 인한 영양실조를 불러 일으켜 지난 시대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崔美子교수(계명대·식생활학과)는"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 푸드는 간편하고맛이 있어 현재 20대 전후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들 식품은 고지방, 고열량인 반면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지 않아 영양의 불균형화를 이루기가 쉽다"고 밝히고"이들 식품으로 한끼를 대용하지 말고 음료수도 콜라대신 오렌지 주스나 우유로 바꿔 마셔 영양의 균형을 찾아주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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