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민자당대표가 드디어 대표직을 사퇴했다. 김대표는 19일 오전 청구동자택에서 "오늘로 의사당과 당사의 대표실을 문닫을 것"이라며 "앞으로내 생각대로 갈 것이다"고 말해 스스로 당을 걸어나가는 길을 택했다.90년 3당합당이후 민자당의 최고위원직을 맡은지 5년, 김영삼정부출범이후총재가 임면권을 갖는 대표위원직을 맡은지 2년만에 자리를 물러난 것이다.그의 예견된 것이긴 하지만 갑작스런 대표직 퇴진결정은 김영삼대통령과 더이상 정치역정을 같이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세계화를 내걸며 당의 개혁을 외쳤지만 결국 그 의미가 자신의 퇴진으로 목표가 정해지자 여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강한 톤으로 김대통령의 도덕성과 역사인식 부족을 공격했다. 당에서는 이때부터 "김대통령과 김대표가 더이상 한배를 타고 갈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그리고는 "뭔가 해보려 한다"며 다른 뜻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가김대통령과 한길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오래전의 일로 알려지고 있다. 측근들은 대표최고위원직에서 대표위원으로 격하됐을때 이미대강의 분위기를 감지했고 지난해말 주례회동이 걸러질 때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사후의 일들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김대통령과 정치적인 길을 같이한 것은 90년 1월22일 3당합당을 결행하면서 부터다. 내각제를 전제로 당시 3당합당의 주역이었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표 3인은 '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14대대선을 전후한92년 당시 민자당경선을 전후해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최고위원은 소위 4.8밀약이라는 것을 통해 김영삼지지쪽으로 선회, 두사람간의 밀월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이후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의 공손함을 보여왔다.그러나 김대표측은 두번다 김대통령측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의와 도덕성의 문제를 걸고 나오는 것이다. 3당합당의 정신도 자신을 믿어주고 정치운명을 같이할 것이라는 약속도 헌신짝이 돼버린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힌 19일에도 그는 "어제까지 예정됐던 행사로 끝이 났다"며 "얼마후 없어질 민자당기를 3당합당의 한 주역이었던 노태우전대통령의 영식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대표로서 할일은 일단락됐다"고 했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창당정신이 사라지는 것에대한 미련과 함께 민자당에 대한 강한 애착을 표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전날 대구행을 고집한 것도 당기가 수명을 다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고한것도 이같은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김대표는 그러나 대표직을 사퇴할뿐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는 "당사 대표실은 내방이아니지만 의원회관은 내방이다"고 했다. 정계은퇴의사는 없다는 뜻이다. 김대표주변에서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2월7일까지 민자당적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측근은 김대표거취와 관련, "김대표가 민자당 전당대회를 마친뒤 탈당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명도 바뀌고 당기도 바뀌고바탕정신도 바뀌는 당에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는 신당을 창당, 자신이 말한대로 의회주의와 대의정치 실현을 구호로내걸고 여권지지에서 떨어져 가는 중산층을 껴안는 길을 갈것으로 보인다.그에게는 충청도라는 강력한 지지기반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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