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JP 영욕의 정치역정

18일 끝내 민자당의 대표직을 물러난 김종필민자당대표. 그는 한마디로 풍운의 정치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굴신과 처세의 달인으로 부침을 거듭해 왔다.

지난61년 5.16주역으로 정치권에 등장한 지난 35년간 그의 정치역정은 바람잘 날이 없었다.

그는 박정희소장의 둘도 없는 참모로 5.16직후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곧이어 공화당을 창당, 6대국회의원이 된후 당의장에 취임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공화당 사전조직문제를 둘러싼 내부의 암투로 그는 장기외유를 떠나야 했다.이름하여 ' 자의반 타의반'외유였다.

8개월간의 방황끝에 귀국해 정치를 재개했으나 한.일회담문제를 둘러싼 당내갈등으로 1년도 안돼 또다시 두번째 외유길에 올라야만 했다.67년 그는 고향에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완전한 정계복귀가 이뤄지는듯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다시 얄궂은 운명의 여신이 다가왔다.

3선개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3선개헌에 반대하는 공화당내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게 됐다.

그는 또 돌아왔다.

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부총재로 컴백한 것이다.

곧 이어 국무총리에 취임해 4년6개월간 장수했다.

명실상부한 2인자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10.26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그의 인생 행로를 또 다시 바꿔 놓았다.일단 공화당총재에 취임 서울의 봄을 맞으며 대통령선거출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5.17로 그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환수당하고 계엄사에 투옥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으로 떠난 그는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87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며 총선에서 35석을 건져4당체제의 한 축을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2년여뒤에는 3당합당을 만들어 냈으며 김영삼대통령 당선에 공헌, 민자당대표라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고희를 앞둔 나이에 끝내 민자당 대표에서 밀려나는 시련을 맞았다. 그는 이제 민자당을 탈당, 또다시 정치세력을 형성할 것이 확실시되고있다.

영원한 2인자 JP. 그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이라할 수 있는 정치 마무리를할지 지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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