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정거래법시행령 개정안 의미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공정거래 정책의중심이 종전의 기업 규모에 대한 제한에서 소유 분산과 재무구조 개선 유도로 옮겨가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국제화와 개방화 시대를 맞아 외국의 거대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에 대해 더 이상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논리에 얽매여 규제 일변도로 나가기보다는 잘하는 그룹이나 기업은 그만큼 우대하고 제대로 못하면 규제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에 졸업 개념을 도입, 매년 기업집단의 수를줄여나가고 모든 재벌의 소유 분산과 재무구조 실태가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에는 기업집단 지정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한 것은 공정거래 정책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획기적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룹의 경우 소유 분산 및 재무구조가 우량한 것으로 판단돼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공정거래법의 각종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별 계열사도 출자총액 제한을 받지 않게 되므로 신규 투자를 비롯한 기업활동을 그만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소유 분산과 재무구조에 대한 판단 기준이 너무 허술해 그동안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데 기여했던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포기할 만큼 재벌들의 소유 분산과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할수 있을 것인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상장사의 평균 자기자본 비율이 28.17%(4백82개 12월 결산법인, 93년)이고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의 평균 자기자본 비율이 20.1%(94년4월1일)에 이르고 있는 판에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라는 족쇄를 풀어주는 대가로 제시한기준의 하나가 자기자본 비율 20%라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보다는 소유 분산에 초점을 둔 것으로 분산이 잘 된 기업은 주주들 눈치를 보아야 하므로 대주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기준을 높여 잡으면 해당 기업 또는 그룹이전무한 현실과 이상적인 목표 사이에서 이루어진 정책 선택의 결과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여신관리제도상의 주식분산 우량기업이었던 대우중공업이 소액 주주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대우조선과의 합병을 감행한 것이 우리 기업 풍토의 현실임을감안하면 공정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공정위는 당초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시행령에서 규정할 소유 분산우량기업의 지정 기준으로 동일인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5%, 계열사까지 포함한 내부지분은 10%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는각각 8%와 15%로대폭 높인 것도 소유 분산 유도와는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견해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지분을 5%와 10%로 제한하면 적대적 기업매수에 대응한 경영권 보호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 기준에 맞는 회사가5개 안팎에 불과, 소유 분산 유인장치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소 완화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미, 일 등 선진국에서는 1~2%의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들이 상당수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잘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더욱이 비상장 주식은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어 차명 주주가 수두룩할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단순히 주주명부상의 내부지분율을 기준으로 소유분산 우량 정도를 따지는 것은 매우 안일한 발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물론 공정위도 국세청,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을 통해 그룹 총수와 친인척,임직원, 계열사 등의 주식 보유상태와 이동상황, 배당금과 세금의 자금경로등을 집중관리, 소유 분산 우량기업 제도의 악용을 막겠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위장 분산에 대해 보다 철저한 심사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부각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업종전문화와 관련한 주력기업의 출자문제도 주목을끌고 있다.

공정위는 당초 삼성그룹의 승용차 시장 진출을 계기로 신규 참입 규제의 의미가 없어진 만큼 업종전문화를 위한 주력기업제도에 대해 공정거래법상의예외를 인정할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통상산업부가 청와대까지 동원해강력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막판까지 진통을 겪다가 일부 허용으로 낙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6백16개로 이중 69개 금융 보험사는 공정거래법적용을 받지 않으며 나머지는 1백9개 주력기업과 4백38개 비주력기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조치는 상장된 기업에만 출자제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52개 주력기업과 74개 비주력기업이 각각 혜택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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