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반세기 생활변천 50년(7)-가족형태

해방 반세기가 흐르는동안 우리네 가정의 모습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외형적으로는 가족의 형태, 내면적으로는 가족관계의 변화가 그러하다.50년전에 이미 가정을 꾸렸었던 지금의 70~80대 노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고.해방과 한국전쟁, 5.16… 쉴새없이 밀어닥친 격동의 물결과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과정에서 나타난 한국가정의 변화에 대해 계명대 박혜인교수(가정관리학)는 "외형적으로는 전통적인 대가족의 붕괴와 핵가족의 확산, 다양한 가족형태의 등장,내적인 측면에서는 가족관계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50년전만해도 우리의 일반적인 가정은 대가족주의를 바탕으로한 가족형태였다. 여성쪽에서 볼때 시조부모까지 모시는 층층시하가 적지않았다. '제먹을것 제가 타고 난다'는 옛말에 기대 최소한 3~4명, 10명내외의 자녀를 두는집이 적지않았다.

"3~4대가 한울타리안에서 사는 것이 보통이었심더. 분가도 옳게 안해 여러명의 아들,며느리들과 함께 사는 집도 많았고요" 45년 9월 일본서 돌아왔다는 최천수씨(72.여.대구시 남구 봉덕동)는 둘째인 자기네 가족도 시부모,형님가족과 여러해를 함께 살았다고 말한다. "대가족하에서는 뭐든지 윗사람하라는대로 해야했심더. 말대꾸같은건 입밖에도 못냈지예. 맨날 눈물콧물 짤며 살았지예 뭐" 대식구 옷 빨래하느라 얼어붙은 도랑을 도끼로 깨서 빨다보면 손이 오리발같이 빨갛게 얼었다며 잠시 옛시절을 돌아본 崔씨는 "이전과는 천상간으로 달라진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대가족형태는 해방이후 물밀듯듯이 밀려온 서구문화의 유입, 5.16혁명정부에 의한 국가근대화운동, 60년대의 경제개발,70년대 가속화된 산업사회로의 이행,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참여 증가,가족계획 등에 따라 빠른 속도로 바뀌어져갔다.

6.25는 전쟁미망인 양산, 가정의 경제적 파탄 등으로 소가족화를 불가피하게했으며 60년대에 시작된 가족계획운동은 핵가족의 확산과 정착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61년 4월 각계대표 44명이 참석,대한적십자사에서 가족계획협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된 이 운동은 그해 12월 정부의 국가시책으로 채택됐고이듬해부터 전국적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 '3,3,35'(세살터울로 세 아이만 35세전에 낳자) 슬로건은 '세자녀 낳기'운동을 일으켰고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구호로한 '둘 낳기'운동, 80년대엔 파격적인 '하나 낳기'운동이 등장했다.이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은 핵가족화를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게 했다. 국세조사의 원표를 자료로 우리나라 가족유형을 분류한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5년 32.17%이던 대가족(직.방계포함)이 75년엔 19.8%, 90년엔 16.3%로 줄어든반면 부부가족(핵가족)은 55년 63.6%에서 75년 71.6%, 90년 75.2%로 늘어났으며 평균가족수도 5.61명에서 90년 3.77명, 92년 3.7명으로 줄고 있다.핵가족화가 우리사회 변화에 따른 순기능적 변화인데 반해 급증추세의 이혼은 역기능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일부종사의 윤리가 강요됐던 지난 시절에는 이혼이야말로 가문과 부모의 이름을 먹칠하는 불명예이며 이혼당한 여성은 평생 죄인처럼 지내야했다. 물론 자유연애에 탐닉했던일부 신여성들은 이혼도 하고 재혼도 했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고된 시집살이에 짓눌려 살아도, 남편의 따스한 눈길한번 못받아도, '팔자려니…' 체념하고 살았다. 과부들도 평생수절을 훈장마냥 가슴에 달고 살았다. 청상으로늙는 것이 안타까워 부모들이 짐짓 보쌈을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쌈당하는 과부들이 마구 등을 물어뜯어 얼굴을 등반대쪽으로 해서 업어갔다는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70년대 들어서부터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선물과 함께 '이혼급증'이라는 후유증이 나타났다. 94년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가정현황'(92년 조사)에 따르면 한해에 41만8천쌍이 결혼하고 7쌍중 1쌍이 파경을 맞으며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1.31건으로 72년의 3.7배에 이르고 있다. 평균연령 남 37세,여 33세인 이혼부부의 평균동거기간은 8.4년으로 미국(9.1년),일본(10.8년),영국(11.6년)보다도 짧다.

핵가족외에도 우리사회의 가족형태는 최근 크게 다양화되고 있다. 부모와 기혼자녀가 가까이 살면서 한집처럼 오가는 수정확대가족, 안채와 바깥채, 위아래층 등으로 독립해 살며 식사를 함께 하는 등 프라이버시 유지와 동거를조화시키는 수정핵가족, 이혼이나 재혼,미혼모 문제와 맞물린 편부모가족과계부모가족 ,의식변화에 따른 독신가족, 자발적인 무자녀가족, 노인가족,소년소녀가족, 입양가족, 공동체가족,주말가족….

이중 독신가족의 증가는 현대가족을 특징짓는 중요한 변화상이다. 결혼관의변화와 특히 여성의 고학력화,전문직 진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독신가족은25~29세 여성의 미혼율이 60년 4.9%에서 90년엔 21.8%로 4배이상, 30~34세연령층의 미혼율은 0.6%에서 5.6%로 9배로 늘어난 9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여성의 결혼행태' 통계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집장가 못간 남녀가 죽으면 원한맺힌 귀신이 된다고 믿었던 독신금기사회에서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른 노인가구,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등으로 인한 소년소녀가정, 신앙이나 우정을 토대로한 공동체가족 등의 증가 역시 또하나의가족형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 국내에도 동성간의 애정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나와 충격과 함께 새삼 달라진 사회를 실감케하고 있다.

박혜인교수는 "가족형태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강조,"심화되는 가족윤리 붕괴,가족해체 현상 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우리네 전통가족문화를 형성했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정윤리를 확립하려는 노력이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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