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는 고려말 절의 충신으로 잘 알려진 야은 길재의 시조입니다. 야은이관직에서 물러나 금오산에 입산하여 은거 생활을 하고 있다가 왕조가 패망한후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옛 송도를 찾아 폐허가 된 만월대 앞에서 사라진 인걸들(우왕, 정몽주, 최영등)을 흠모하여 남긴 명작이라 생각합니다.**야은 길재의 충절**
야은 길재 하면 포은의 제자로서 동방의 성리학자이고 젊은 성균관 박사로서 태학에서 유생들을 가르친 교수이며, 낙향한 후에는 교육개혁자로서 평생을 보낸 충신입니다. 태종이 세자로 있을 때 야은과 함께 수학한 우의를 기려 야은에게 태상박사의 직을 제수하여 등용하려 했으나 그는 불사이성 등의이유로 끝까지 사양합니다. 그러한 길재의 정신이야 말로 결국 조선조 선비도의 진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후세에 퇴계가 조선의 충신 5인과 성리학자16인 중 한분으로 야은을 선정한 것으로도 우리는 야은의 인품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야은의 공적이 전 왕조에 대한 단순한충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순한 충절이 결정적이었다면 부모가 섬긴 고려왕조를 군사부 일체의 정신에서 자식도 섬겨야 했겠으나야은은 오히려 아들에게 내가 고려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본받아 너의 조선임금을 섬긴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노라 고 했습니다. 군왕을 위하여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역사적인 인물은 많지만 야은과 같이 천민, 양반 모두의규범으로 반천년이 넘도록 숭앙되는 인물은 찾기 힘듭니다. 많은 충렬지사들가운데 야은이 후세의 대표적인 사표가 된 이유는 충절 이외 또다른데 있습니다.
야은은 고려말의 윤리적 혼탁과 이성계의 군사혁명, 그리고 신왕조의 정치적혼란등이 뒤얽힌 진실로 변절 무상한 격동기에 살았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살면서 야은은 자기의 불변하는 생의 원칙을 통해 여러가지 훌륭한 가치를스스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특히 정치세계 속에서의 윤리적 기준의 고수, 정치철학적인 정신과 불사이군의 충절, 그리고 절대적 통치자의 권력을 넘어선우의의 유지, 더 나아가서는 정치권력 구조를 이용한 부귀공명의 거부와 은일자로서의 홀로서기,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적인 인간을 배양한 삶등이 그러한 가치들입니다. 결국 모든 가치가 전도되고 붕괴되는 시대에 야은은 항구적인 가치들을 창출해 낸 것입니다.
**항구적 가치 창출**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는 야은 같은 인걸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더구나국민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불변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인걸은 어디에도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정치가와 통치자들이 있지만 우리와 그들이 해 놓은일은 광복 50년의 짧은 기간 동안 6, 7개의 공화국을 만들었고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정당들을 창당, 분열, 해체하고 또한 이합집산 후 합당, 탈당 또 다시 창당하는 정치적 순환구조의 틀 속에서만 허덕여 왔습니다. 새로운 정당들이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상대적인 가치들의 연속적인 변화였습니다.
이와는 달리 20세기 지구촌 저편에서는 여러 인걸들의 성숙한 화려함을 봅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한 정치인들(처칠, 루스벨트, 아데나워, 벤 구리온 등). 이들은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역을 재편성하거나 탈당, 창당 등의 곡예를 하지 않았으며 특수 정당의 오너 로 군림하지도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실이 부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기네들의국민을 위해 항구적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냄으로써 국가 번영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현대사 인물 드물어**
만일 금오산인이 오늘 살아 있어 설 연휴 때 앞다투는 차량과 인파와 정국의혼란을 보았으면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반만년 내조국을 봉고로
돌아드니
강산도 황폐한데 인물은
어디갔나
어즈버 불변가치를 뉘라서와 논하리
우리는 오는 2월12일(음 1월13일)이 지금부터 5백75년 전 야은 선생을 우리고장 금오산 동편 기슭에 장사한 날이기에 그를 기리며 을해년에는 선생 같은 인걸로서 철학자 ㅔ÷括텝출현을 기다려 봅니다.
〈계명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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