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

어느날, 저녁 때다. 찍찍이에게 저녁 밥을 먹인 뒤다. 시찰구에 한종씨 얼굴이 나타난다. 그가 문을 열어준다. 나는 찍찍이를 뒷허리에 감추고 있다. 찍찍이를 슬그머니 놓아 준다. 한종씨는 옷꾸러미를 들고 있다. 그는 화장실로나를 데리고 간다. 그가 옷꾸러미를 내게 준다. 청바지와 파카다."제복 벗구, 네 옷 입어. 넌 이제 여기서 나가도 돼"한종씨가 말한다. 바깥은 이미 어둑밭이다. 나는 혼자 현관을 나선다. 재 같은게 떨어져 내린다.눈가루다. 운동장은 어둠 속에 비어 있다. 철대문이 있는 쪽에 외등이 켜져있다. 나는 그쪽으로 걷다, 뒤돌아 본다. 쇠창살 사이, 불빛이 희미하다. 찰흙색짜리들의 울음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나는 그들을 식당에서만 만났다. 그들과 헤어지는게 시원하고 섭섭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는 않다. 찍찍이가 있는 내방에는 다시 가고 싶다. 파카 주머니에 손을 찌른다. 찍찍이를 데려왔음 싶다. 주머니에 있다면 찍찍이를 조물락거릴터이다."넌 뭐냐?"

수위실 창문이 열린다. 군청색 제복과 제모를 쓴 수위다. 나는 우두커니 서있다. 수위가 어디에다 전화를 건다. 그가 알았다고 대답한다. 사잇 철문을열어준다. 나는 언덕길을 내리 걷는다.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럽다. 길 주위로는 아카시아나무.은사시나무.졸참나무들이 서 있다. 빈 가지가 눈을 받지 못하고 떨군다. 나무 가지 사이로 시내의 불빛이 보인다. 기요와 짱구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다. 여기서 마주친다면? 식구들은 숲 속으로 데려가 나를 팰 터이다. 짱구가 잭나이프로 내 허벅지를 찌를는지도 모른다. 짱구는그런 짓을 잘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한다. 흥부식당까지 걷기로 작정한다.먼 길이다. 그러나 걸을 수밖에 없다. 그땐 달이 밝았다. 오늘은 눈이 내린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을 기렸다. 눈에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했지. 첫째가 위중이다. 눈이 사람을 가둬 놓으니 사색을 하기 알맞지.둘째, 위의라 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인정이 그립겠지. 셋째, 위축이라했다. 나무와 양식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눈에 갇혀 죽게 되니 저축심을 높혀. 넷째, 위범이라 했다. 눈이 구질구질한 것을 다 덮어버리니 사람이 대범해져. 다섯째가 위연이다. 눈 녹은 물에 세수를 하면 살색이 고와진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뒤쪽에서 불빛이 다가온다. 크랙션을 빵빵 눌러댄다. 나는 뒤돌아 본다."시우씨"

차가 내 옆에 멈춰 선다. 창문으로 노경주가 내다본다.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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