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6)

노경주가 앞 좌석 옆문을 열어준다. 나는 그녀 옆자리에 앉는다. 차안에 비누 냄새가 난다. 앞 유리창에 서리가 끼여 뿌옇다. 노경주가 털장갑 손으로유리를 닦는다.망할자식. 내한테 말도 않구 내보내다니. 각방을 둘러보구 와서 퇴근 차비를 하는데 전화가 걸려왔지 뭐예요. 한종씨가 받았는데, 정문에서 시우씨를내보내라는 눈치라

노경주가 처음은 혼잣말을 하다, 나를 본다. 그녀의 안경에 빛이 스친다. 그녀가 차의 시동을 건다. 차가 조심스럽게 언덕 길을 내려간다. 전조등앞에눈가루가 떨어진다. 차가 그 눈가루를 차고 나간다. 산골에 눈이 내리면 길이 막혔다. 한참 한박눈이 솜처럼 퍼부으면, 금방 발목까지 쟁였다. 시우야!강 건너에서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오던 나룻터에 아버지가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눈사람이 되어 잘 보이지않았다. 키를낮춘 하늘과 땅이 온통 하예 아무것도 구별할 수가 없었다. 깜깜한 그믐밤이면 아무것도 볼수가 없다. 검정색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흰종이 역시 아무것도 없다. 희기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도 세상이 다 희므로, 아무것도볼 수가 없다.

시우씨, 시우씨가 여기서 며칠 동안 있었는지 아세요?

노경주가 묻는다. 내가 가만 있자, 노경주 말한다.

열이틀이예요. 시무식 날 왔었고, 오늘이 14일이니깐. 아줌마 있는 온주시그 식당으로 갈 거예요?

나는 조그맣게 대답한다. 노경주가 차비는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을 못한다. 주머니에는 동전조차 없다. 차는 어느 사이 시내로 들어선다. 앞쪽이네거리다. 차와 사람들이 눈길에 엉키고 있다. 클랙션을 울려댄다. 신호등이바뀌어도 차가 잘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차 사이로 빠져 나간다. 어지러운 길 위로 눈이 흩뿌려 떨어진다.

망할자식. 식당 아줌마가 주고간 차비까지 챙겼어. 이 눈길에 어딜 어떻게가라구

노경주의 차도 빠져 나가지 못한다. 노경주가 안전벨트 사이에 끼워둔 핸드백을 연다. 지폐 두장을 꺼낸다.

차비하세요

나는 머리를 젓는다. 먼 길이지만 나는 온주시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식당에도착하면 인희엄마가 반길 것이다. 시우 오빠 왔어, 하며 인희엄마가 인희를깨우겠고, 인희가 눈을 부비며 나를 볼 거였다. 내품에 와락 안길 터이다.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즐겁게 밤길을 걸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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