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명을 웃도는 체첸인들은 어디로 갔나.러시아의 무력침공에 격렬히 대항했지만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체첸은 인구 1백20만명중 3분의 1인 40여만명을 난민으로 만들었으며 이들중 4만~5만여명은 행적이 묘연하다. 3일 러시아의 체첸 작전 총지휘관으로 새로임명된 아나톨리 쿨리코프장군은 "잔당들이 남아 있는 그로즈니의 남서쪽자보드수코이지역만 '정화'하면 그로즈니를 완전 장악한다"고 밝혀 체첸사태는 '상황끝'에 와있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 체첸인들은 여전히 러시아병사와 강추위라는 두개의 적과 싸우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주먹과손톱에 비유되는 이 전쟁의 끝은 행방이 드러나지 않는 이들 4만~5만여명의체첸인들과 함께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40여만명의 전쟁난민중 절반인 20여만명은 수도 그로즈니를 비롯 국내의 부서진 건물더미에서 추운 눈보라를 얇은 담요 한장으로 가리며 전쟁을 피하고 있다. 이들은 부족한 식량과 각종질병에 방치돼 있다고 지난 2일 UN인도국은 밝혔다. 체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제적십자사의 인도주의적 손길이 닿기 때문이다.부족하지만 3만명분의 식량과 담요,의류등이 이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체첸을 떠난 난민들의 생활은 비참하다.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인 이들은몇벌의 옷가지만 챙겨 떠난 탓에 매서운 추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으며 한집에 50여명이 기거하는등 곤경을 겪고 있다. "트럭 가득 실려온 이들은 음식도 없고 상당수는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병약해 있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렇게 떠난 사람이 약 16만명. 9만여명은 잉구세티아공화국에, 5천명은 북부 유세티아에, 6만5천명은 다제스탄공화국으로 각각 흩어져 있다고 UN은 밝히고 있다.
난민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지친 그들을 반갑게 맞아 주는 곳이 하나도없다는 것이다. 잉구세티아共은 체첸과 비슷한 처지다. 같은 역사에 언어,문화,종교까지 같다. 그러나 지난 1일 보리스 아가포프 잉구세티아부총리가"잉구세티아에서는 4명중 한명이 난민"이라며 노골적인 구박을 준 후로는이곳 난민들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여기다 행방이 묘연한 4만~5만여명의 체첸인들에 대해 체첸인들 스스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있다.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난민으로 분리는 되지만 왜 그들의 행적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러시아의 한 전쟁전문가는 난민으로가장한 전투요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수도 그로즈니가 폭격세례를받고 대통령궁이 함락당하면서 게릴라 요원화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혹독한 추위에 이같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산속으로숨어든다는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들 역시 난민으로 흩어져 있다고 보고있다.체첸의 분리독립요구는 좌절됐다. 과거 스탈린시절 카자흐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한 80만의 인구중 24만명이 질병과 기아로 사망한 아픈 기억이 있듯이 지금 체첸에서는 러시아에 적개심을 불태울 또다른 아픈 기억이 잉태되고 있다고 UN의 한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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