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골을 떠난 뒤, 슬리퍼와 온도계 만드는 가내공장에서 일했다. 부랑아수용소에 있었다. 멍텅구리배를 타고 새우를 잡았다. 그리고 종성시로 왔다.그걸 다 노경주에게 말할 수가 없다. 머리 속에 그 생활들이 그려질 뿐이다.나는 다시 차문을 연다."시우씨, 어디 가요? 걸어 가게?"
나는 차를 밀고 싶다. 노경주는 차에 타고, 나는 밀고. 산골에서 썰매를 탈때, 나는 늘 썰매를 밀었다. 포클레인이나 트럭은 밀 수가 없다. 작은 승용차이기에 밀 수 있다. 밀고 온주시의 흥부식당까지 갈 수가 있다. 나는 다시차를 민다. 차가 구르지 않는다. 아까는 굴렀는데 이상하다. 뒷 유리에 쌓인눈을 닦아낸다. 차 안을 들여다 본다. 노경주가 돌아보며 웃는다. 그녀가 브레이크를 내린다. 차가 다시 움직인다. 미는 발이 눈 속에 푹푹 빠진다. 한참 동안 차를 밀자, 땀이 난다. 갑자기 다시 차가 밀리지 않는다. 노경주가차에서 내린다. 핸드백을 메고 있다. 검정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시우씨, 우리 걸어요. 내가 삼거리 주유소까지 바래다 줄께요"노경주가 내 팔을 당긴다. 나는 꼬마 차를 돌아본다.
"어차피 차는 못 움직여요. 길이 꽉 막혔잖아요. 이럴 땐 문명의 이기가 아무런 쓸모가 없죠"
정말 차들이 모두 멈춰 있다. 전조등을 켜고 소리만 요란하게 낸다. 그 소리들이 차의 비명 같다. 시동을 끄면 차도 잠을 잔다. 시동을 켜면 달리려 한다. 차는 달리기 위해서 있다.
눈을 맞으며 노경주와 나는 걷는다. 그녀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노경주는 말이 없다. 그녀가 미끄러지려다 겨우 균형을 잡는다."시우씨, 여자와 눈을 맞으며 걸어본 적이 있나요?"
노경주가 넘어질 것 같다. 나는 거기에만 신경이 쓰인다.
"시우씨, 제발 말좀 해봐요"
"예, 엄마하고…"
그날이 생각난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길이 막혔는지 아버지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말이 아버지 봉급날이라 했다. 이튿날 아침,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나섰다. 눈이 얼마나 왔는지 정강이까지 빠졌다. 얼음 언 아우라지강을 건넜다. 여량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았다. 눈때문이라 했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전교조 자금으로 다 날리니, 자기가 무슨 운동꾼이라구. 봉급을 빼앗아 와야 해. 달린 입이 몇인데. 엄마가 말했다. 텅 빈 역에서 엄마는 발만 동동 굴렀다.
"시해가 여동생인가보죠?"
노경주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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