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 반세기 생활변천 50년(9)-이성교제

-'미팅'에서'고팅'을 지나'엘리베이터 팅','폰팅','A/V팅'까지-다소 생소한 단어들이지만 현대를 사는 청소년, 대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말들이다. 완고한 어른들이 들으면 '말세'라고 혀를 찰만큼 현대의 '남녀'는각양각색으로 만남의 장을 만든다. 그것은 곧 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또 다른 역사가 되기도 한다.세월이 흐르면서 '남녀의 만남'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교에 뿌리내린 조선조는 남존여비등 지극히 폐쇄적인 잔재를 현대에까지 남기기도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치욕적이었다. 조선시대때 유명여성들의 이름이 택호나 호, ○○의 부인, ○○의 어머니등의 형태로 전하는 것이나 축첩제도의묵인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도 기방에 출입하거나'성의 대상'으로서 만나는 정도였다. '인륜지 대사'라며 중요시 여겼던 결혼의 경우도 부모들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상기하면 일반적인 남녀의 만남이나 이성교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상상도 하기 힘든일

조선조를 지나 개화기-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개화여성, 신여성등의 개념이나타나고 이들의 신세대적인 '러브 스토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최고학부에서 공부한 일부 여성에게 국한됐었다. 남녀의 만남은 여전히 금기시됐고 그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열여덟살때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일방적으로 혼인을 했지. 같은 동네에 살면서 먼발치로 몇번 본적은 있었고 가끔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얘기도 해본적이 없어. 물론 그때는 먹고 살기가 바빠 시간도 없었지만 잘못 소문이라도 나는 날엔 그 동네에서 살 수도 없었지"

올해 70세인 김모할머니(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는 이렇게 회상하면서 친구들도 모두 부모들이 정한 데로 혼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이성교제의 부자유스러움은 7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 이성교제 혹은 연애의개념은 '살기 바빴던' 현재 40~50대의 젊은 시절에는 호사가들의 방탕이나유희정도로 나타났었다. 그나마 이성접촉이 잦을 수 있는 대학가에서도 남녀간의 만남은 흔치 않았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팅'이라는 단어는 일부의 '병든 대학생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치부됐고, '캠퍼스 커플'은 좋든 싫든 언제나 학생들의 화제꺼리가 됐다. 같은 과에서도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거리 몰려 수업했고 서로 얘기를 나눌 기회도 흔하지 않았다. 여학생에게 말을 거는 것을 친구들끼리 내기할 만큼 순진한(?) 시대이기도 했다.

*캠퍼스서도 드물어*

"70년대 후반 대학시절때 이성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대개 미팅을 통해서만 가능했지요. 같은 캠퍼스에서는 소문이 나기도 쉽고 여학생쪽에서 꺼려오히려 접근이 쉽지 않았고 앞선(?) 친구들의 주선으로 미팅이 성사되면 며칠간 가슴이 설레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대후 복학을 하니까동급생 남녀사이의 반말은 예사이고 캠퍼스에서 팔짱을 끼고 다니는 학생들도 늘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최상준씨(38·대구시 서구 내당동)의 말처럼 80년대에 들면서 남녀의 이성교제는 '완전개방'이 됐다. 70년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단만남'에서'일대일의 만남'이 유행하는 시대가 됐고, 이성접촉 연령이 하향화됐다. 대학가에서 전시대적인 유물로 사라지다시피한 '미팅'이 지금은 중·고등학생은 물론, 국민학생들 사이에까지 유행하는 단어가 됐다.

*국교생까지 미팅*

거리를 나서면 팔짱을 낀 정도가 아니라 서로 안다시피 걸어가는 연인들의모습도 흔해졌다. 캠퍼스에서 진한 키스를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세대들도 늘었다. 또 대학가에는 이제 '고팅(고고장에서의 미팅)','소개팅(일대일로 소개받는 미팅)','찍팅(특정인을 지정해 하는 미팅)','엘리베이터 팅(몇 층을 정해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문이 열릴때 상대의 얼굴을 보고 만남을 정하는 미팅)','선팅(선을 겸한 미팅)','폰팅(전화로하는 미팅)'이 성행한다. 뿐만 아니라 문명이기의 발달과 함께 '삐삐팅(삐삐를 통해 만나는 미팅)','A/V팅(자신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찍어 소개하는미팅)'까지 선보이게 됐다.

이같이 다양한 만남의 모습은 '건전한 이성교제'를 넘어 성모럴의 침몰로까지 이어진다. '일회용 사랑'이나 '계약동거', '계약결혼'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심지어 극소수이긴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관계만 갖는 '베드팅', '장팅'이라는 말도 나돌아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일회용사랑 늘어나*

"이성교제란 다양한 만남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시켜가며, 한편으로는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윤리문제란 과거 관습에서 오는 관념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결국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세대임을 자처하는 신모양(20·ㄱ대 2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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